전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뚜렷해지면서 국내에서 시중 자금이 주식·암호화폐 등 위험자산에서 은행 예적금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역(逆)머니 무브’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주요 중앙은행들의 통화 긴축 정책과 인플레이션 압박 등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들도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은 지난 1월 말 기준 666조 7769억 원을 기록했다. 전달보다 11조 8410억 원 늘어난 수준이다. 총수신액도 1788조 5520억 원으로 1800조 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달보다는 34조 원가량 뛰었다. 가계대출 잔액이 한 달 새 1조 3634억 원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출을 받아 주식·부동산에 투자하기보다 안전자산인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등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위험 회피 현상은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한때 26조 원에 육박했던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21조 원대를 기록하며 10개월 만에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42조 1000억 원에 달했던 코스피·코스닥 합산 월평균 거래 대금은 올 1월 20조 6510억 원까지 감소했다. 1년 사이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또 최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국내 4대 암호화폐거래소의 예치금은 지난해 말 7조 6310억 원에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가 시행된 지난해 9월 24일(9조 2000억 원)보다 1조 5690억 원(17.1%) 줄었다.
시장에서는 올해 당분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최소 네 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한국은행 역시 두세 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높은 금리의 정기예적금을 찾는 고객들을 겨냥해 특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통화 긴축 속도가 빨라지면서 위험자산에 넣었던 자금이 은행의 예적금으로 회귀하고 있다”며 “은행·저축은행들도 2%대의 정기예금 특판을 출시하며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름세를 탄 저축은행도 이날 1년 만기 정기예금의 평균 금리가 2.45%로 집계됐다.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주식·채권 모두에서 보유 부담이 커지자 배당주 펀드나 EMP 펀드와 같은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도 있다. 김경식 플레인바닐라투자자문 대표는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 상품 판매사들과 연금 투자자들이 투자 자금 피난처를 찾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