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알짜 '쪼개기 상장' 들끓는 여론에…"시범 케이스 될라" 기업들 물적분할 일단 멈춤

■CJ ENM 물적분할 보류

대선주자·거래소까지 규제안 찬성

기업들 "소나기 피하자" 궤도수정

일부선 "자금조달 급한데" 속앓이





CJ ENM이 8일 제2의 스튜디오 자회사 설립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부정적인 여론과 규제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J ENM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엔데버스튜디오를 9200억 원에 인수한다는 깜짝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이날 주식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별도의 공시였다. CJ ENM은 예능·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하는 스튜디오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스튜디오드래곤을 이미 자회사로 두고 있지만 글로벌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를 위한 효율적인 멀티스튜디오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또 글로벌 콘텐츠 확대를 통해 지식재산권(IP) 유통 등 수익 사업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떠올린 것은 ‘물적 분할의 악몽’이었다. 알짜 사업부를 물적 분할한 후 상장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은 새로 상장하는 자회사의 주식은 한 주도 받지 못한 채 기존 주식의 가격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CJ ENM의 주가는 발표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업공개(IPO) 시장이 달아오르자 상장사들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사업을 자회사로 물적 분할한 뒤 상장시켜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우후죽순으로 추진했다.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부문을 분사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하고 상장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에 이어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을 상장할 예정이었다. 이외에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배터리 부문을 물적 분할해 SK온을 설립했으며 NHN도 클라우드 사업부를 물적 분할하겠다고 밝혔다. 만도도 자율주행 사업 부문의 물적 분할을 지난해 확정했다. 세아베스틸은 특수강 사업의 분할을 추진하고 있다. LS일렉트릭 또한 전기차용 전력 제어장치인 EV릴레이 관련 사업부를 분할한다고 이날 공시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인적 분할과 달리 물적 분할은 기존 주주가 신설 자회사의 주식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데다 자회사의 중복 상장까지 이뤄질 경우 모회사의 기업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모회사의 대주주는 직접적인 자금 투입 없이 신설 자회사에 대한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외부의 투자금을 쉽게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관련기사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과 카카오의 주가 하락으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비판 여론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동학개미들의 표심을 의식한 대선 후보들은 일제히 물적 분할에 대한 규제책을 내놓겠다고 나섰다. 일부 주자들은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우선 부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물적 분할 후 재상장을 금지하는 안까지 들고 나왔다. 거래소는 지난달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CJ ENM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이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동학개미들의 여론이 안 좋은 상황에서 자칫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며 “물적 분할을 추진해온 기업들이 당분간 실행을 보류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물적 분할을 통해 세운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상장을 재검토하기로 했고 SK온도 “IPO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CJ ENM은 자회사 설립은 추진하되 구체적인 안은 오는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 전까지 다각적으로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 개선 전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강행했다가 맞을 역풍을 고려하면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CJ ENM관계자는 “제2스튜디오 설립은 추진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설립 방식에 대해서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음악 사업 부문 분사 추진에 대해서는 일각의 관측이었을 뿐 공식적으로 논의가 이뤄지지도 않았고 회사에서 밝힌 바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 사업을 위한 투자금 마련이 절실한 기업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장을 준비 중인 대기업의 자회사 관계자는 “신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IPO가 급한데 최근 분위기로 인해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박준호 기자·심우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