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코로나19가 여전히 전세계에서 맹위를 떨쳤지만 기업들은 비대면의 장애를 넘어 왕성한 투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공격적 기업 투자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인수합병(M&A) 규모는 세계적으로 5조 8000억달러(약 6905조원)에 달해 사상 최대를 찍었고, 우리나라 역시 상장·비상장사를 가리지 않고 1000건 가까운 M&A가 단행돼 58조원 넘는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M&A는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최고 난이도의 딜(Deal)로 꼽힙니다. 한국의 IB명가들에서 M&A의 산실로 자리잡은 곳들을 서울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시그널(Signal)이 찾아가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다양하고 입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해보겠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의 투자은행(IB) 사업을 말할 때 법인 고객 모임인 '진우회'는 빼놓을 수 없다. 2004년 시작된 진우회는 '진정한 벗(眞友會)'이라는 의미로 한국투자증권의 캐치프레이즈인 '트루프렌드(truefriend)'와 일맥 상통한다. 한국투자증권의 IB는 20년 가까이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온 진우회 회원사들을 증시에 데뷔시키고, 또 그 회사의 채권을 발행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리고 IB그룹내 IB3본부를 주축으로 기업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종 단계의 서비스인 인수 금융과 인수합병(M&A) 자문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IB 그룹은 진우회와 어깨동무 하며 외형을 키우고 내실을 다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가 기업공개(IPO)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 앞장서 진우회를 만들었다. 정 대표는 IPO를 염두에 둔 비상장 기업은 물론 상장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기업까지 고객사로 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임원 승진 전까지 300만km를 운전해 자동차 4대를 폐차한 일화는 여의도 증권맨들 사이에선 전설처럼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 눈 앞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기업의 전체 생애주기를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때 IB 사업의 실적도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것이라는 게 그의 영업 철학이었다.
진우회는 회원사가 300곳을 훌쩍 넘어서면서 한국투자증권 IB1본부의 성장 원천이 됐다. 정보 교류를 위해 진우회에 가입한 회원사 CEO(최고경영자)들이 상장을 위해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는 시스템은 탄탄한 전통이 됐다. 한국투자증권이 줄곧 IPO 주관 실적 상위권을 유지하며 ‘명가’로 대접 받는 최대 비결이다.
IPO에 성공한 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등이 필요해 질 수 있는데 이는 IB2본부가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회사채 발행 수요가 많은 대기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진우회 회원사들을 통한 실적도 만만치 않다. IB2본부가 대기업 대비 자금 조달 여건이 녹록지 않을 경우에도 진우회 회원사들을 상대로 메자닌 발행 등을 통해 자금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출범해 인수금융과 M&A 자문을 맡고 있는 IB3본부는 기업 고객을 위한 한투증권 서비스의 ‘끝판왕’ 이다. 기업의 생애주기를 고려할 때 M&A는 IPO와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에 이어 자본시장에서 택할 수 있는 최종 단계의 카드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대주주가 매각을 통해 경영 활동에 그만 마침표를 찍길 원할 경우 IB3본부가 나서 사모펀드(PEF)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인수자를 찾아주는가 하면 M&A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신사업에 진출하려 하면 인수 자문은 물론 자금 조달 등도 지원하고 있다. IB3본부의 존재가 한투증권이 자본시장 ‘트루 프렌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최종 병기인 것이다.
정 대표가 취임 2년 차인 2020년 IB그룹을 신설하고 산하에 IB1·2·3본부를 모은 전략도 기업의 생애주기 전반을 염두에 두고 시장에 접근할 필요성이 반영됐다. 한투증권은 본부 간, 부서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과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조직 문화 속에서도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특히 가장 늦게 출범한 IB3본부 입장에선 다른 본부의 기업 네트워크를 공유해 상생·협력을 도모할 필요가 적지 않았다.
IB3본부장 자리도 그래서 시너지 극대화에 적합한 인물이 기용됐는데 김성철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99년 한투에 입사해 IB1본부에서 13년 간 근무한 데 이어 IB2본부로 옮겨 6년을 일했다. IPO와 회사채 분야에서 20년 가까운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정 대표가 2019년 김 상무를 전략기획실장에 중용한 것도 IB 핵심 업무를 아우르는 경험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는데 지난해 김 상무가 IB3본부장에 발탁되면서 사내 모든 본부에서 근무한 이력을 갖게 됐다. 김 본부장은 “예측이 어려운 M&A 시장 특성상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면서도 “인수금융 부문에서 최고의 증권사로 입지를 공고히 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 상무는 IB3 본부를 이끈지 얼마 안돼 대형 딜들을 무리없이 처리하며 정 대표의 신뢰에 부응했다. 한투는 지난해 KB증권과 함께 1조 6000억 원 규모의 두산공작기계 인수금융 주선을 맡아 지난달 거래를 잘 마무리했다. 지난해 1조원을 넘는 인수금융은 IB업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딜 성사의 배경에는 오랜 기간 끈끈하게 이어 온 한투와 디티알오토모티브(007340)간 관계가 있었다. 한투증권은 디티알오토모티브의 두산공작기계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한 회사채 발행에도 대표 주관사로 참여해 총대를 메는 등 디티알오토모티브측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며 치밀하게 고난위도의 딜을 마무리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투증권이 2020년에 두산공작기계 차입금 리파이낸싱(자본재조정)에 참여했다 일부 금융 주선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례를 감안하면 양사간 파트너십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한샘(009240) M&A에서도 한투증권의 과감함은 돋보였다.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롯데를 끌어들여 한샘 인수를 순조롭게 마쳤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인수가격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투증권은 면밀한 분석 끝에 한샘 인수금융을 맡기로 했고 8500억 원 중 6500억 원을 주선하면서 딜을 무난히 클로징하는데 1등 조력자가 됐다.
한투의 IB3본부는 대형 인수금융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올 해도 빅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했다. 김 본부장은 "법인 네트워크에도 강점이 있지만 합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딜 소싱을 지향하고 있다"면서 "올 해는 IB그룹내 시너지가 한 층 강해지면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