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지난해 퇴직한 퇴직자들에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봄일 것이다. 오래 몸담았던 회사, 동료, 명함.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켜주었던 그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지금, 당혹스러웠던 계절을 지나 또 다른 계절이 눈앞에 있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봄, 퇴직 이후의 일상을 계획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첫째, 이력서를 재점검하라.
많은 퇴직자가 재취업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포지션을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구직 과정이 길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직급이 높고 한 직장에서의 재직기간이 길수록 재취업률은 더욱 낮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본 칼럼 3호 <퇴직 후 재취업률 10%의 시대, 4가지 취업 성공 전략>에서 자세히 언급했듯, 퇴직 후 재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력을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력서는 지금까지 한 일들의 연대기가 아니라, 구직자의 경쟁력을 매력 있게 보여주는 브랜드 같은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의 구직시장과 나의 전문분야에서 ‘나는 과연 경쟁력이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남의 이력 보듯 나의 이력을 검토하라.
둘째, 콘텐츠 생산자가 되라.
베이비부머와 X세대가 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퇴직자가 콘텐츠 소비자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제한된 매체의 콘텐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회사에서도 오랜 기간 타인의 보고서와 발표물을 검토하고 의사결정 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므로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퇴직 이후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막막한 기분이 드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만의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소비하고 감상하는 주체에서, 자신과의 경험을 담은 유일한 콘텐츠를 만드는 콘텐츠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는 마땅한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럴 리가 없다. 나 자신이 무궁무진한 콘텐츠 그 자체임을 잊지 말고 하나씩 만들어 가자.
셋째,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라.
퇴직 후 자신의 하루를 묘사해 보자.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정해진 행동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대기업 최고경영진급 퇴직자들도 퇴직 후의 무료한 일상과 막연한 미래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때마다 ‘지금까지 한반도 해보지 않은 세 가지’를 실천하라고 권하는데, 무엇을 할 지조차 생각하기 어려워하는 퇴직자에서부터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을 10가지 이상 실천해 보는 퇴직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은 퇴직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첫 단계가 된다. 몇 가지 인상적인 일들은 다음과 같다. 카페 테라스에서 혼자 책을 읽는 일, 출근하는 와이프의 구두를 닦아 놓는 일, 아들과 같은 백팩을 메는 일, 지하철을 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역에 내리는 일, 친구들과 캠핑을 가는 일, 40년 전 고등학교 동창을 먼저 찾아보는 일 등이 그것이다. 너무 사소해 보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힘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넷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라.
야마구치 슈는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에서 ‘우리의 커리어는 용의주도하게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우발적인 일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 상상하지 못한 일은 대부분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일을 주도면밀하게 구상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기도 한다. 퇴직 후 만나온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전 직장 동료들, 오랜 친구들.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겠으나, 퇴직 이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면 관계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생길지도 모르지 않은가.
다섯째, 자신의 퇴직 후 정서 상태를 살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 일상은 힘들다. 재취업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 퇴직 당시가 생각나기도 하고 퇴직 결정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이 떠오를 것이다. 한참이 지나고서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정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퇴직자들도 많다. 퇴직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니, 어디 가서 토로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럴수록 자신의 마음 상태를 스스로 잘 살펴야 한다. 퇴직 이후의 감정 및 정서 상태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 요소들을 점검하면서 안정적인 퇴직 후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새롭게 구상하는 커리어 가능성도 내면의 안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퇴직 후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자 하는 퇴직자들은 화담,하다 홈페이지에서 퇴직 적응 4단계를 자가 점검해 볼 수 있다.
인생의 새로운 봄을 위한 여정을 준비할 때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시간, 장소, 사람을 꼽고 있다. 퇴직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현재의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일상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계획과 실행하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