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다리 잃고 숨지고 위험천만 '청소차 뒷발판'…미화원들 "대안 없나요?"

청소차 불법 개조한 뒷발판

교통사고, 폐암 등 유발 요인

지자체 뒷발판 제거 통보에도

현장선 "대안 없는 지시" 비판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용산구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연합뉴스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용산구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연합뉴스




#2015년 10월 환경미화원 A씨와 B씨는 경기도 고양시의 4차선 도로변에서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청소차 뒷발판에 올라서는 순간 혈중 알코올 농도 0.225%의 만취운전자가 몰던 차가 이들을 덮쳤다. A씨는 이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고 B씨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B씨는 환경미화원이 된 지 3주차였다.



#1996년 순천시 환경미화원으로 채용된 C씨는 2017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중 사망했다. 1990년부터 순천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한 D씨 역시 2017년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다. 폐암 진단 이후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C씨와 D씨 유족이 순천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선 2021년 1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순천시가 이들에게 각각 1500만원과 12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결정을 내렸다.

환경미화원들이 청소차 뒷발판에 매달려 작업하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청소차 뒷발판은 환경미화원들의 업무 효율을 위해 청소차를 불법 개조해 차량 후면에 발판을 설치한 것이다. 환경미화원은 발판에 매달려 골목과 도로를 누비고 수 m에서 수십 m가량을 이동할 때마다 청소차가 멈춘다. 미화원은 그때마다 발판에서 내려 종량제봉투를 차에 싣고 다시 발판에 오른다. 발판이 없다면 미화원은 지상으로부터 꽤 높이가 있는 청소차의 조수석에 올라타고 뛰어내려야 한다.

환경미화원들이 시내 주택가를 돌며 연탄재를 청소차에 옮겨 싣고 있다./연합뉴스환경미화원들이 시내 주택가를 돌며 연탄재를 청소차에 옮겨 싣고 있다./연합뉴스



효율성만 따지기엔 뒷발판은 미화원들을 사지로 내몬다. 미화원들이 발판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은 채로 차가 출발하거나 급정거하면 순간 중심을 잃게 된다. 뒷차와 충돌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요즘과 같은 겨울철엔 발판이 미끄러워 위험성이 더 커진다. 도로를 달릴 때는 심한 소음에 노출된다. 청소차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디젤엔진 배기가스를 고스란히 마시는 것도 문제다. 디젤엔진 배기가스는 폐암을 유발하는 1등급 발암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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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면 위험성은 더 뚜렷하다. 환경부에서 집계한 환경미화원 산재접수 현황에 따르면 골절(추락, 교통사고), 상해, 사망 등으로 신청된 건수는 2017년 130건에서 2018년 196건, 2019년 219건, 2020년 201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 중 추락,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이 전체 건수의 92%를 넘는다. 고용부가 2020년 인천·안산·대전 지역 환경미화원 288명에 대해 폐기능을 검사했더니 20% 가까이가 폐기능 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의 폐기능 장애 비율이 1%인 것을 감안하면 19배나 높은 것이다.

미화원을 차량 사고와 폐암에 노출시키는 뒷발판은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운전자는 자동차의 화물 적재함에 사람을 태우고 운행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에서도 발판 설치 등은 불법으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불법적 장치가 묵인된 것은 발판 없이는 미화원이 과중한 업무를 소화할 수 없어서다. 청소차 1대당 하루 8시간 동안 100km를 이동하며 폐기물 3~4.5톤을 수거해야 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따르면 환경미화원 1명이 하루 평균 취급하는 폐기물량은 가로청소작업 227kg, 생활폐기물 수거작업 6433kg, 음식물류폐기물 수거작업 3636kg 등으로 하루 10톤이 넘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환경 공무 직원이 한국형 청소차를 타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연합뉴스대구 수성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환경 공무 직원이 한국형 청소차를 타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연합뉴스


결국 시간에 쫓겨서 일해야 하는 근본적인 작업 환경 개선 없이 발판만 없애라는 지시는 현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난 1월 24일 부천시는 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청소업체에 청소차 뒷발판을 제거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미화원들은 현행 3인 1조 근무 형태로는 뒷발판 없이 당일 시간대 쓰레기 수거가 불가능하다며 대안 제시 없이 제거만 하라는 건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현행 3인 1조 규정을 4인 1조로 바꾸거나 저상형 차량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올해 예산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기에 당장 4인 1조를 추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뒷발판을 없애고 측면에 별도의 탑승공간을 마련한 한국형 저상형 청소차를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작업 속도가 느리고 수거 용량도 적어 현장에서 기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기도는 작년부터 청소차 뒤쪽에 달린 배기구를 측면 도로 방향으로 전환하는 개조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청소차 뒷발판을 대신할 실질적인 장치와 제도 개선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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