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핀란드화






지난 1939년 11월 30일 소련군이 영토 문제를 트집 잡아 핀란드를 침공했다. 인구 370만 명에 불과한 핀란드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소련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웃 국가들의 지원도 전혀 없었다. 핀란드는 국토의 10% 이상을 소련에 넘겨주고 평화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핀란드는 소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미국의 유럽 원조 계획인 마셜플랜을 거부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이처럼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점차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는 현상을 ‘핀란드화(Filandization)’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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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칼 그루버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대(對)소련 외교를 핀란드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핀란드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1960년대 서독 정치인들이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 정책을 핀란드에 빗대 비판하면서 경멸적 의미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핀란드 정부는 당시 소련에 비판적인 영화나 출판까지 통제하는 등 철저한 검열을 실시했다. 소련의 반체제 작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 군도’의 핀란드어 번역본은 당국의 통제 때문에 스웨덴에서 출간됐다. 하지만 핀란드는 최근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핀란드는 언제든지 나토 회원국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천명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핀란드화와 유사한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 서방과 교류할 수 있도록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 최악의 군사 충돌을 막자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저자세로 일관하면 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우리도 주권과 국익·안보를 지키기 위해 중국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 강화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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