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미국인들의 턱없는 경제 불신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호스트

임금·고용지표 뚜렷한 개선에도

소비자 신뢰지수는 10년來 저점

양극화된 당파시대 사는 미국인

객관적 자료에 합리적 반응 안해






요즘 정치판의 한복판에는 경제에 관한 불가사의 한 수수께끼가 가로놓여 있다. 경제는 힘차게 돌아가는데 대다수 미국인들이 암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인플레이션은 잠시 뒤로 미뤄놓자. 현재 미국 경제는 전문가들조차 예상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21년의 성장률은 5.7%로 거의 40년 만에 최고치를 작성했다. 실업률은 4%로 떨어졌고 빈곤율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을 밑돈다. 빈곤 아동 인구가 40% 가까이 줄었고 창업률은 기록적인 속도로 치솟고 있다. 파산신청이 뚝 떨어진 반면 미국인들의 저축액은 건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자리가 넘치다 보니 곳곳에서 진풍경이 속출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스콘신이다. 공화당 소속인 론 존슨 상원의원은 연방기금을 이용해 자신의 출신 주인 위스콘신에 트럭 생산 공장을 짓겠다는 오시코시사의 제안을 거부했다. “위스콘신의 당면 과제는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이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근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상황에서 연방기금까지 동원해 대규모 인력 수요를 초래할 생산 공장을 유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현재 위스콘신의 실업률은 2.8%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떤가. 이번 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7.5% 상승하면서 거의 40년래 최고치를 찍었다. 소비자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을 법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풀어놓은 초대형 코로나19 구제 패키지가 물가를 부채질한 부분적 이유다. 그러나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이 7.5% 상승했지만 물가 예측 전문가인 마크 잰디의 지적대로 지금의 수치는 2021년 1월의 지극히 낮은 기준선인 1.4%와 비교한 것이다. 월간 물가 상승률인 0.6%는 지난해 10월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미국진보센터의 계산에 따르면 물가를 감안한 미국인들의 2021년도 가처분소득은 대비 연도인 2020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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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소비자신뢰지수는 10년래 저점에 머물고 있다. 1월에 실시한 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82%는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취임 이후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도널드 트럼프 단 한 명을 제외하면 현대사에 등장한 전임 대통령들이 동일 시점에 기록한 지지율을 밑돈다.

많은 정치평자들은 이를 코로나 바이러스 효과로 간주한다. 뉴욕매거진 에드 킬고어의 지적대로 “살기 힘든 세상이 되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제일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역사적 기준에서 보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그리 높지 않고 임금도 건전한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언론의 보도 행태, 특히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고용 상황에는 말을 아끼는 우익 언론을 비난한다. 그 결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늘날의 경제 상황이 1980년 6월에 비해 열악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당시 인플레이션은 14%에 달했고 실질임금은 한 해 동안 6% 축소됐다.

모두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필자는 이보다 더 큰 이슈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인들은 객관적인 자료에 합리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심하게 양극화된 당파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자신뢰지수 혹은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은 정치의 바깥쪽에 위치한 사람들의 견해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바깥쪽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은 객관적 사실보다 실체 없는 두려움이 더 중요하다. 2016년 대선을 학자의 관점에서 꼼꼼히 분석한 펜실베이니아대의 다이애나 C 뮤츠는 트럼프가 실직과 임금 정체를 경험한 경제적 ‘낙오 계층’의 지지만으로 당선됐다는 관련 보고서의 핵심 아이디어는 객관적 자료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2016년 선거 당시의 후보 선호도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그룹 사이에서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 점차 확대되는 인종적 다양성과 세계화라는 변화의 동력은 백인들에게 마치 포위를 당한 듯한 심리적 압박감을 안겨줬다.”

코로나19 예방접종 통계는 백인들의 이 같은 심리 상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이라지만 백분율로 환산한 완전 접종자 비율은 선진 산업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다. 상당수 미국인들이 이른바 엘리트의 강권을 받아들이기보다 차라리 치명적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편을 택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사실과 자료, 심지어 본인 자신의 웰빙을 상대로 문화적 불안감과 계층 갈등이 거둔 승리의 실상을 보여주는 최상의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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