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구글·넷플릭스 등 해외에 본사를 두고 국내에서 영업하는 다국적기업에 국세청이 칼을 빼 들었다. 이들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들은 모(母)회사 및 납세의무자가 해외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그동안 국세청 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거나 심지어 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해외 세무 당국의 입법 및 행정 사례를 검토해 납세자의 전산망 등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지난 15일 세무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의 ‘다국적기업 등의 세무조사 비협조·거부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제재) 방안’ 용역을 발주했다.
국세청은 연구 배경에 대해 “다국적기업이 정당한 사유 없이 세무조사에 비협조 또는 거부하고 로펌 등 조세 전문가 집단의 조력을 받아 조사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용역을 통해 납세자의 전산망 등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근거를 마련해 다국적기업이 세무조사에 협조하지 않더라도 실효성 있는 정보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국세청의 복안이다.
실제 국세청 내부에서는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가 도를 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강하다. 가령 전 세계 1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는 2020년 국내 매출액 4154억 원 중 3204억 원을 본사 수수료로 지급하는 방법으로 법인세를 21억 원만 부담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2020년 8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세무조사에 착수해 약 800억 원의 세금을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조사는 당초 4개월로 예정됐지만 넷플릭스가 자료 제출에 비협조하면서 조사 기간이 길어지게 됐다. 넷플릭스는 세금 추징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국세청 조사는 아니지만 애플 역시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하자 사무실 내 인트라넷과 인터넷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방해한 바 있다. 2017년 2차 현장 조사에서는 직원들이 공정위 공무원의 팔을 잡아당기고 막아서는 등 현장 진입을 방해했다.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다국적기업들이 일단 국세청 조사를 받으면 대형 로펌 등을 동원해 갖은 ‘방해’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조세 회피 금액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 따르면 구글·넷플릭스·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19곳의 지난해 국내 법인세 총부담세액은 1539억 원 수준으로 네이버 법인세액(4303억 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들이 정상적인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하거나 늑장 대응하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어 해외 세정 당국의 대응 방안과 입법례를 찾아보려는 취지”라며 “올해 디지털세 도입에 따라 다국적기업에 대한 조사 방식을 체계화할 필요도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