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사슴사냥게임






1950년대 미국 젊은이 사이에서 ‘치킨게임’이 유행했다. 한밤중 도로에서 경쟁자 두 명이 마주 보면서 각자 자신의 차를 몰고 돌진하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하지만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을 경우 공멸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반대로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임 이론도 있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저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유래된 ‘사슴사냥게임(Stag Hunt Gam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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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여러 명이 사슴 사냥에 나섰다. 모두 사슴 한 마리만 잡으면 풍족하게 나눠 먹을 수 있다. 이에 동의한 사냥꾼들은 협력하기로 하고 사슴 한 마리를 몰아 산 위로 포위망을 점점 좁혀갔다. 그런데 그때 지나가는 토끼를 본 사냥꾼은 ‘사슴을 잡지 못하더라도 토끼 한 마리면 내 배를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끼를 쫓아 포위망을 이탈했고 사슴은 그 틈을 타 도망쳤다. 루소는 개별 국가를 사냥꾼에 비유하며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 간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파한다.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서로 협조한다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묵직한 가르침도 선사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대선 정국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전문가 사이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진화해야 ‘윈윈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조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야권이 확실하게 정권을 교체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단일화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치킨게임’이 아닌 ‘사슴사냥게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선 역사에서 단일화 성공 사례로는 1997년의 ‘DJP 연대’와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연합’을 꼽을 수 있다. 두 번 모두 ‘사즉생(死卽生)’의 절박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절박함을 찾기 힘들다. 국민이 원하는 단일화는 단순히 권력 지분을 나누는 야합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불행을 초래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헌법 87조에 명시된 책임총리제를 실천해 진정한 권력 분점을 이루는 것이다. 3권 분립과 여권 내 권력 분점까지 실현된다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비극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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