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APG "다른 기관과 연대해 행동"…경영진 교체 요구할 수도

■유럽 연기금 '탄소중립' 경영 압박…韓기업 'ESG 리스크' 현실화

"韓정부 탄소중립 목표설정 늦어

이젠 기업들이 실천해야 할 시기"

반도체·철강 등 주력기업 타깃

APG, 삼성전자 지분 0.5% 보유

'소수주주권' 단독 행사 가능성도





‘넷제로(탄소 중립) 경영’을 향한 큰손의 압박이 시작됐다.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현대제철·LG화학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 10곳에 주주서한을 보내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의 감축을 요구하고 나섰다. APG는 해당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연대해 행동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 간섭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APG는 최근 국내 상장 대기업 10곳에 ‘기후 위기 대응 및 탄소 배출 감축 전략의 혁신적인 실행에 대한 제언’이라는 내용의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네덜란드계 연금투자회사인 APG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 850조 원 규모의 연금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간 지속 가능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춘 투자를 구현해 온 APG는 투자한 기업을 대상으로 기후 위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APG는 국가적 위상이나 경제 규모에 비해 탄소 중립 사회에 대한 준비가 늦은 한국 기업들에 서한을 우선 발송했다.



박유경 APG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이사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한국은 글로벌 경제 대국으로 위상이 높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탄소 중립에 대한 선언이나 목표 설정이 늦었다”며 “지난해 한국 정부가 탄소 중립에 대한 목표를 설정한 만큼 이제는 한국 기업들이 실천해야 할 시기”라고 했다. 또 “만약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함께 연대해 감축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경영진 교체 등 주주권을 행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꺼낼 것(사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아울러 서한을 받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당장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실질적인 기업의 감축 노력이 최우선의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APG는 추후 일본과 인도·인도네시아 등 이머징 마켓과 아시아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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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서한을 받은 기업을 업종별로 분류하면 제조업이 7곳, 통신업 2곳, 지주사 1곳이다. 여기에는 한국 제조업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 기업들이 모두 포함돼 있는 만큼 기업 대응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APG가 보유한 지분은 회사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지분율은 0.5%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은 0.01~0.5% 수준으로 APG 단독으로도 여러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자본금 1000억 원 이상 상장사를 기준으로 대표소송제기는 0.01%, 이사·감사의 해임 청구는 0.25%, 주주제안은 0.5%의 지분율이 요건이다.

이번 주주서한에서 삼성전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투자자들에게 공개하고 있지만 탄소 중립에 대한 회사 차원의 목표나 비전 선언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또한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반도체 제조업을 영위하고 있어 정보기술(IT) 제조업에 속한 다른 경쟁사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점도 지적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주주의 요청을 성의 있게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SK하이닉스는 동종 업계인 삼성전자와 비교했을 경우 매출액 대비 탄소 배출량이 많은 편이라는 점이 서한을 받은 이유로 꼽혔다. 현대제철은 서한을 받은 기업 10곳 가운데 가장 많은 탄소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2020년에 매출 증가 없이 탄소 배출이 현저하게 증가한 점이 문제로 꼽혔다. SK㈜는 탄소 중립에 대한 목표만 있을 뿐 정확한 계획이 없다는 점이 언급됐다. 이 밖에 LG디스플레이·LG화학·포스코케미칼·롯데케미칼·SK텔레콤·LG유플러스 등도 탄소 배출량 감축과 ESG 정보 공유 등을 요청 받았다.

재계는 글로벌 연기금 세력이 이번 서한을 시작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시작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APG와 영국 국가퇴직연금신탁(NEST)은 한국전력이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에 참여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투자를 철회한 일도 있었다. 문제는 업종 고유의 특성상 다량의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무리하게 감축에 나설 경우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만해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수요가 높아지자 반도체 생산량도 덩달아 증가했으며 그 결과 이들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의 절대량도 많아졌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삼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우선적으로 제품 단위당 배출량을 줄이는 데 역량을 쏟아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넷제로 실현을 위해 정부가 배출량 감축 투자와 연구개발(R&D)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상무는 “탄소 중립을 위해 기업들이 여러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국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탈탄소 혁신 기술에 달려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R&D 지원과 함께 산업계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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