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으로 큰 화면을 채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에 발맞추어 거장 박찬욱 감독도 자신의 상상력이 집약된 영화 '일장춘몽'을 핸드폰으로 구현했다. 아울러 영화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게 핸드폰 촬영은 더없이 좋은 도구라고 추천했다.
18일 오전 애플 캠페인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의 일환인 '일장춘몽'(감독 박찬욱) 기자간담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자리에는 박찬욱 감독, 김우형 촬영감독을 비롯해 배우 유해진, 김옥빈, 박정민이 함께했다.
'일장춘몽'은 장의사(유해진)가 고을의 은인 여협 흰담비(김옥빈)을 묻어줄 관을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 버려진 무덤을 파헤치다가 그 무덤의 주인인 검객(박정민)을 깨우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품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및 동영상을 통해 아이폰의 강력한 카메라 성능을 직접 결과물로 보여주는 '샷 온 아이폰'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2011년 아이폰4로 '파란만장'이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 기억이 좋아서 꾸준히 단편 영화 작업을 왔다"며 "이번에는 진보된 기술이 탑재된 기계로 새로운 단편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함께했다"고 말했다.
'일장춘몽'은 무협, 로맨스, 판타지,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한다. 박 감독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단편으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드는 장편 영화로는 새로운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으니까"라고 너스레를 떨며 "또 작은 핸드폰으로 찍는다고 하면 자유가 먼저 떠오르지 않냐. 자연스럽게 특정한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마음대로 여기저기 가는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이런 마당극 같은 장르가 탄생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제목에 대해서는 "사자성어 중에 적당한 게 있을까 찾기 시작했다. 보통 사자성어 중에서 찾으면 어울리는 게 하나쯤은 나오기 마련"이라며 "일장춘몽이라는 게 내용과 잘 어울리더라. 인생이 그저 한바탕 덧없는 꿈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냥 꿈이 아닌, 춘몽이라고 한 것을 보면 덧없지만 아름답다는 것도 내포하고 있어서 좋았다"고 덧붙였다.
영화 '1987', '고지전', '암살' 등의 작품에 촬영을 담당한 김우형 촬영감독이 '리틀 드러머 걸' 이후 '일장춘몽'을 통해 박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김 감독은 "촬영감독 중에서 박 감독의 연락을 받고 거절할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한 번 작업한 게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데, 다시 연락이 와서 좋았다"며 "핸드폰으로 촬영한다는 게 도전이라기보다는 경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촬영할 때 카메라를 움직이기 위해 큰 장비를 사용하는데 이번에는 손에 들고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소감도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아이폰에 여러 가지 렌즈를 착용해 시도했다. 그런데 렌즈 없이 아이폰으로만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시네마틱 모드도 발견했다"며 "시네마틱 모드는 사람, 반려동물과 같은 중요한 새 피사체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것을 미리 예측하고, 실제로 피사체가 화면 안으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초점을 전환해 주는 기능"이라고 소개했다.
핸드폰으로 촬영한 건 배우들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유해진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갈 때도 생소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김옥빈은 "연기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구석에 핸드폰이 있더라. 알게 모르게 여러 군데 배치돼 있었다"고 신기함을 표했다. 박정민은 "기동성이 좋으니까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촬영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많았다"고 했다.
박 감독은 핸드폰으로 영화를 찍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그는 "영화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화면을 구성하느냐가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제일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핸드폰으로는 그런 실험을 하기 좋다"며 "똑같은 이야기지만 장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는데, 다 시도할 수 있다. 또 렌즈도 바꾸면서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이를 직접 경험해 보고 비교하면서 음미하는 게 감독이 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유해진부터 박정민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다. "유해진과 작품을 한 적이 없지만, 영화계에 함께 있으면서 꾸준히 왕래한 사이다. 전작에서는 유해진과 맞는 작품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유해진을 놓고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며 "김옥빈은 '박쥐'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이후 친한 사이로 지내다가 다시 함께하게 됐는데, 연기력과 미모는 변하지 않았더라"고 말했다. 박정민에 대해서는 "'시동', '변산' 등을 보면서 박정민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박 감독의 러브콜에 배우들도 화답했다. 유해진은 "모든 배우들이 박 감독님과 함께하길 원할 거다. '언제쯤 감독님과 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불러주셔서 나의 꿈 중 하나가 이뤄졌다"고 뿌듯함을 표했다. 김옥빈은 "'박쥐' 때 촬영 현장 나가는 게 매일 설렜다. 오랜만에 그 느낌을 받겠구나 싶어서 더없이 행복했다"며 "20대에 작업했고, 30대에도 작업을 했으니까 40대에 또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바랐다. 박정민은 "처음에 연락을 받고 심장이 갑자기 뛰었다. 나한테는 꿈같은 일이었다"며 "전에 아이폰으로 만든 단편 영화를 몇 편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박 감독님의 지휘 아래 아이폰으로 촬영한다고 하니 설렜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해진은 마을의 은인을 위한 관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관을 파내는 장의사 역을 맡았다. 그는 "감독님이 워낙 디렉션을 잘 해주셔서 거기에 의지를 많이 한 것 같다. 특히 말맛을 살리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언어에 큰 애착을 갖고 계신다"며 "흘려버릴 만한 장, 단음까지 신경 써서 살렸다"고 말했다.
김옥빈과 박정민은 관을 두고 싸우다가 사랑에 빠지는 흰담비와 검객을 연기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호흡이 작품에 중요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옥빈은 "박정민은 오랜 팬이어서 만나서 연기하는 걸 기대하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우고 싶었고, 친해지고 싶었다"며 "박정민이 처음에 낯을 많이 가려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한 친구처럼 친밀도가 쌓인 것 같다. 호흡은 99점"이라고 칭찬했다.
박정민은 "김옥빈이 워낙 나보다 선배고, 경력이 많아서 다가가기 어려웠다. 촬영 전에 액션 스쿨에서 만나서 같이 연습했는데, 나는 못하는데 옆에서 정말 잘해서 자격지심이 들 정도"라며 "감사하게 김옥빈이 나한테 손을 내밀어 줬고, 이후 편해져서 현장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감사했다.
한편 '일장춘몽'은 18일 애플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