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의 ‘돈 풀기’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눈앞의 선거에 매몰돼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재정 건전성 원칙을 뿌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관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대선이 우리 경제의 중대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당장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그 어느 때와 비교해도 긴장감이 높다. 환자에 비유하면 코로나19라는 기저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긴장 △미중 갈등 악화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제 둔화 등 중대 질병이 한꺼번에 찾아온 격이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냉전 시대 이후 가장 커졌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긴장은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이번 사태는 공급망 병목현상과 겹쳐 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21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지난 19일(현지 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1.07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배럴당 120달러로 급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러시아 천연가스의 85%가 유럽에 수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유럽발(發) 에너지 위기까지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물가가 급등하는 한편 수입 대금 상승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3.6%를 기록해 넉 달 연속 3%를 웃돌았다.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인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말까지는 글로벌 유가 상승이 물가 오름세를 견인했다면 새해 들어서는 외식비, 공산품 가격이 모두 뛰며 전방위 물가 인상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정부는 최근 외식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며 치킨·햄버거 등 프랜차이즈 업종의 메뉴 가격을 공개하는 공시제도까지 도입할 정도로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가에 더해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면 투자 자금 유출이 나타나게 된다. 이미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4615억 달러까지 낮아져 석 달 연속 감소했다. 무역수지 적자가 국내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입이 증가해 적자가 나타난 것이라면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현재 수지 적자는 대체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앞으로 외환보유액 감소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무분별한 재정지출 확대로 국가채무까지 늘고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외환·금융시장에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급격한 통화 긴축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가뜩이나 외화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그 속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질 수 있어서다. 실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부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브루스 캐스먼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9회 연속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남은 7번의 FOMC 회의에서 모두 금리 인상을 결정하고 이어 내년에도 두 차례 또 인상한다는 얘기다. JP모건의 예상대로라면 올해 말 미국의 기준금리는 1.75~2.00%, 내년 3월에는 2.25~2.50%에 이르게 된다. JP모건은 올해 1분기 글로벌 소비자물가지수(CPI) 전망치도 기존 3.5%에서 5.7%로 올렸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국가 신인도 하락, 원화 유출 등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한미 통화 스와프가 중단된 상황에서 다음 달부터 미국 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면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원화값 약세) 주식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선 주자들이 선거 이후 대규모 재정지출을 약속하면서 금리 인상을 되레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추가경정예산에서 부족한 부분은 선거 이후 경제 부스터샷으로 대거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적자 국채 발행뿐이다. 그러나 시장에 수십조 원 규모의 국고채 물량이 쏟아지면 발행금리가 오르고(국채값 하락), 발행금리 인상은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뜩이나 오름세를 탄 금리가 더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연내 주택담보대출금리가 7%대까지 인상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가 퍼준 지원금이 자칫 서민들의 고통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최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와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통상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는 하지만 지정학적 갈등 등에 따라 그 속도가 예상외로 빨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 문제”라며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진짜로 다 지키겠다고 나서면 그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