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가가 져야 할 빚을 가계가 대신 져 국가부채가 낮고 가계부채는 높습니다. 확장 재정을 통해 불균형을 시정해야 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올해 물가는 상고하저 흐름을 나타내 하반기 이후 안정화 양상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크라이나 긴장이 수출 성장을 저해할 수 있지만 무역수지는 지난 1월을 저점으로 점차 개선될 것입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이 극도로 확대되고 있지만 여당과 경제 부처 당국자들은 잇달아 낙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하나같이 14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의식한 듯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해 아직은 위기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 신호를 무시하다 우리 경제가 자칫 더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3일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선거를 앞두고 ‘경제는 심리’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다”며 “지금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①수출 강국…무역수지 3개월 적자=경제 낙관론이 앞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수출 실적이다. 우리 수출은 지난달 553억 2000만 달러에 달해 역대 1월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지난해 말부터 수출보다 수입액이 더 늘어 무역수지 적자가 도사리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수출 가격을 올리기도 했지만 원자재 등 수입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를 동반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의 급등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이달 20일 누적 기준 무역수지는 16억 7900만 달러 적자로 지난해 12월 이후 석 달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무역수지가 흔들리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우리나라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인 경상수지까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보인 적이 없다. 경상수지가 적자까지 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흑자 폭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외국인투자가들의 자금 이탈을 불러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외국인은 지난달 상장 주식 1조 677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②낮은 부채비율? 공기업 부채도 국가 책임=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여당은 국가채무 비율을 확장 재정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 채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해보면 훨씬 낮아 씀씀이를 더 풀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OECD 통계 기준 우리나라의 202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은 48.9%로 OECD 평균인 130.4%보다 낮다. 그러나 여기에 정부가 사실상 지급보증을 하고 있어 유사시 언제든 갚아줘야 하는 공기업 부채 400조 원을 더하면(D3 부채)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0년 D3 부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66.2%로 치솟고 올해는 70%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연금 충당 부채 약 1000조 원을 더하면(D4 부채) 부채비율이 12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준(準)기축통화 국가로 평가받는 유럽·일본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빚의 질도 나쁘다. 과거 우리나라가 투자금 확보를 위해 빚을 졌다면 앞으로는 현금성 소비를 위해 부채를 늘리겠다는 것이어서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금리 인상기에 지금처럼 확대 재정정책이 계속 이어지면 자산 버블이나 가계부채 등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③위기 방파제 외환 보유액도 감소=대외 충격에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하는 외환 보유액도 석 달째 줄고 있다. 1월 말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은 4615억 3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 10월 말(4692억 1000만 달러) 대비 76억 8000만 달러 줄었다. 외환 보유액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이나 경제 규모에 비하면 적정 수준에 못 미친다는 우려가 나온다. IMF가 권고하는 적정 외환 보유액 기준은 연간 수출액의 5%, 광의 통화량(M2) 5%, 유동 외채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의 15% 등을 합한 규모의 100~150%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해당 비율이 99%로 사상 처음 100% 밑으로 떨어졌다. 보다 기준이 엄격한 국제결제은행(BIS)은 우리나라 적정 외환 보유액을 9000억~9300억 달러로 본다. 외환 보유액을 현 수준보다 두 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수시로 넘는 등 외환시장도 불안한 만큼 안정적인 외화 유동성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④실물 경기 지표도 잇달아 하락=올 들어 실물 경기 지표가 잇달아 내림세를 보이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에 따르면 이달 전체 산업의 BSI는 전월보다 1포인트 하락한 85를 기록해 두 달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향후 경기가 나쁠 것으로 보는 기업인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 데 더해 공급망 차질,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원자재값 급등이 기업을 짓누르고 있다. 이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한 달 만에 다시 내림세로 돌아서 103.1을 기록했다. 표면상으로는 나쁘지 않은 수치이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향후 경기 전망, 가계 수입 전망, 현재 생활 형편 등을 묻는 구성 지수가 모두 하락하는 등 ‘체감 경기’가 좀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