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고? 여기 한시도 눈뗄 수없이 휘몰아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희대의 로맨스 스캠 사기꾼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리얼리티가 살아나고, 극적인 연출은 재미를 더한다. 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경각심까지 주는 넷플리스 오리지널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지금 꼭 가해자의 뻔뻔한 행각을 보시길.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온라인 등에서 연인을 찾는 것처럼 상대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 수법을 뜻한다. 용어는 낯설지만 현재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사용시간이 늘어가면서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해졌다. 미 시장 감독 기구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지난 14일(현지 시각)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피해액으로 집계된 금액만 5억4,700만 달러(약 6,550억원)이고, 신고된 사건 수는 무려 5만6,000건이다.
로맨스 스캠의 경로는 각양각색이다. 사기꾼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의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거나, 메신저앱 오픈채팅으로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말을 건다. 그중에서도 데이트앱 사기는 특히 더 심각하다. 애초 이성을 만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어플이기 때문에 속아넘어 가기 쉽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는 대표 데이트앱 ‘틴더’로 희대의 사기를 벌인 남자 사이먼과 피해자들을 조명한다. ‘틴더’는 전 세계 190여개국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데이트앱.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틱톡, 유튜브 다음으로 소비자 결제액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먼은 ‘틴더’를 이용해 쉽게 각국의 여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 ‘틴더’ 사기꾼의 수법은 이렇다. 그는 매칭된 여성들에게 호감 살만한 것들을 어필하며 마음을 얻는다. 자신을 다이아몬드업계의 큰손 LLD 다이아몬드의 CEO이자, 다이아몬드의 왕이라 불리는 아버지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물려받은 억만장자인 ‘다이아몬드의 왕자’라고 소개한다. 멀끔한 외모와 패션센스, 매너까지 갖췄다. 심지어 미래를 함께 그리자는 달콤한 말까지 속삭인다.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하는 그를 만난 여성들은 ‘백마 탄 왕자’를 운명처럼 만났고 느낀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사이먼은 보안인 생명인 다이아몬드 업계의 어두운 이면을 강조하며, 때때로 위협을 당한다는 등 온갖 핑계를 대며 돈을 빌린다. 그렇게 그는 동시에 여러 명의 여성들을 만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 A에게 받은 돈으로 B와 호화로운 여행을 하고, B에게 얻은 돈으로 C와 데이트를 하는 돌려 막기 수법이다. 일종의 사랑을 이용한 ‘폰지 사기’다.
일부 피해 여성들은 사이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대출까지 받는다. 곧 갚겠다는 그의 말만 기다렸다가 종국에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이먼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피해 여성의 신문사 제보로 알게 된 그의 민낯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때까지 한 말은 모두 거짓이고, 10대 때부터 사기와 위조를 일삼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수배까지 떨어진 범죄자였다. 수년 동안 데이트앱을 통해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셀 수 없이 많고.
이런 종류의 사건이 쉽게 드러나지 않은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피해 여성들이 용기 낸 끝에 사이먼의 사기 행각이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그녀들에게 쏟아진 댓글들은 “여자들은 너무 잘 속아. 멍청한 여자네” “한심하다" “남자 돈만 노렸네” 등이다. 그녀들을 ‘꽃뱀’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속은 사람이 아니라 작정하고 속인 사람이 잘못이다. 그녀들은 “상대에게 돈을 주는 꽃뱀도 있나”라고 되묻는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사취당한 것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쪽도 그녀들이다. 심지어 피해들 중에는 데이트앱으로 만났지만 이성적 관계로 발전하지 않고 친구로 지내는 이도 있다. 피해자들이 범한 오류는 호감과 신뢰, 사랑을 이용한 그를 만난 것뿐이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영화보다 현실이 더 막장이고 무섭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로 이뤄진 이 작품은 페이크 다큐 영화가 아니다. 대역 배우로 재구성된 것도 아니고, 실제 피해자들이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등장한다. 가해자와 나눴던 메시지와 사진, 영상까지 모조리 공개해 더 실감 난다. 자신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이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이유는 전 세계 여성을 상대로 사기치고 있는 가해자 얼굴을 알리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 시식평 - 말도 안 나오게 만드는 현실적인 결말, Z세대 신조어대로 ‘킹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