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국의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갈리고 있다. 24일(현지 시간) 유럽 국가의 전 정부 수반들이 러시아 기업 이사회에서 발을 뺀 가운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피용 전 프랑스 총리는 러시아 기업 이사회에 남았다. 미국이 강력 제재를 요구하고 나선 상황임에도 이들은 유럽과 러시아의 연결 고리가 깨져서는 안 된다며 다른 입장을 취했다. 지정학적 초점이 동유럽이 아닌 인도태평양으로 옮겨가도 비슷한 서방 균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표지에는 광활한 태평양이 그려져 있다. 반면 프랑스의 전략 문서 표지에는 동아프리카가 한쪽에 있고 반대쪽은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의 전략 문서에는 베를린이 바라보는 동남아시아만 있을 뿐이다.
세 국가 모두 인도태평양 지역을 미래 세계의 중심지로 보고 있지만 우선순위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중국을 어떻게 상대하느냐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며 서방국가에 연합 전선 구축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독일과 프랑스는 이에 소극적이다.
미국의 전략은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지배를 막겠다는 목표가 중심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으로 다른 서방권 국가와의 단합된 전선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미국이 생각하는 분열된 양극 세계를 거부한다. 중국은 폭스바겐·BMW 등 독일 기업이 제품을 수출하는 단일 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미국의 편에 온전히 서는 것은 독일 기업에 피해가 크다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도 실리적 외교를 추구하며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다. 대신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중심으로 하는 다극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인도태평양 지역에 영토를 가진 프랑스는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미국도 중국도 아닌 독자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이 아프리카를 언급하지 않은 반면 프랑스는 전략 지침에서 아프리카를 열한 번 언급한다.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의 지배력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