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키예프 함락 고전·서방 제재에 무리수 던지나…핵 옵션 이어 진공폭탄 사용 의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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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예상 밖의 고전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위협을 언급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민간인 거주지를 포격하고 국제법이 금지하는 대량 살상 무기를 동원하는 등 공세 수위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당초 1~4일 만에 키예프를 함락할 것이라던 미 정보 당국 등의 전망과 달리 침공 엿새째에 돌입한 1일(이하 현지 시간)에도 키예프를 손에 넣지 못하자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자충수로 작용하면서 그가 진퇴양난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1일 폴리티코는 전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하르키우 내 주택가에 포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촬영된 영상에는 미사일이 주택가를 덮쳐 이로 인해 사망한 시신이 차량과 거리에 흩어져 있는 모습이 담겼다. 현지 당국은 이번 공격으로 1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하르키우주의 올레그 시네구보브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주거지역에 포격을 가했다”며 “지금 하르키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그간 군사시설만 타격 대상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예상외의 항전에 당황해 민간인까지 노리는 무차별 포격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초기 단계에서 우크라이나 제압에 실패한 푸틴 대통령이 보다 공격적인 전술을 꺼내 들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고 미 NBC는 전했다.



주춤했던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도 높아졌다. AFP통신은 1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을 포위했으며 검문소 설치에 나섰다고 이고르 콜리하예프 헤르손 시장을 인용해 보도했다. 인구 30만여 명의 헤르손은 흑해와 드네프르강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해 주요 항구도시로 꼽힌다. CNN은 장갑차와 전차·포병 등으로 구성된 약 64㎞ 길이의 대규모 러시아 지상군 호송대가 키예프 중심부에서 불과 25㎞ 떨어진 위치에서 포착됐다고 위성 업체 맥사테크놀로지를 인용해 전했다. 미국의 한 소식통은 “우크라이나군이 아무리 저항해도 군사적·전술적 관점에서 러시아가 키예프를 장악할 수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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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진공 폭탄’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는 “러시아군이 오늘 제네바협약으로 금지된 진공 폭탄을 사용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거대한 가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공 폭탄은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으로, 보통의 폭탄보다 폭발 파장의 지속 시간이 길어 파괴력이 크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무차별적이고 파괴력이 세기 대문에 비윤리적인 대량 살상 무기로 인식된다. 러시아가 이 같은 열기압 무기를 사용했는지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복수의 매체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열기압 로켓 발사대가 다수 발견됐다며 러시아가 곧 우크라이나를 겨냥해 이 같은 열기압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서방 군사정보 당국이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진공 폭탄의 사용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면서도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국제엠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한 유치원을 공격하는 데 클러스터 폭탄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제인도법은 클러스터 폭탄과 같은 무차별적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대포 사용을 늘리면서 인명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키예프 북쪽과 하르키우·체르니히우에서의 대포 사용을 늘렸다”며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중포(heavy artillery)의 사용은 민간인 인명 피해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군은 민간 인프라 시설이나 주거지에 어떠한 공격도 가하지 않는다"며 클러스터폭탄과 진공폭탄을 사용했다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푸틴의 이 같은 공격적인 전술이 자충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와의 교전이 장기전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러시아 내부에서도 침공 반대 여론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러시아 공산당 소속의 미하일 마트베예프가 대열에서 벗어나 ‘전쟁이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밝히는 등 푸틴 대통령의 독선적인 공격에 대한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며 “과연 푸틴과 그의 추종자들을 위해 러시아인들이 제재의 고통을 받으려 하겠느냐”고 전했다.

예상과 다른 전개 양상에 푸틴 대통령이 좌절하고 있다는 발언도 나온다. 미 NBC뉴스는 러시아 경제가 전례 없는 수준의 글로벌 제재를 받고 있는 데다 군대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부하들에게 분노를 표출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차장을 지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심각하게 과소평가했다”며 “이번 침공이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비틀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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