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눈치 보는 ‘이류 동맹’ 전락하면 기업까지 유탄 맞는다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대열에 뒤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우리 기업들이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러시아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을 차단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병력을 최초 투입한 지난달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본격 제재에 착수한 지 6일 만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한국에 주재하는 유럽연합(EU) 25개국 대사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도 전례 없는 전 세계적인 도전 앞에서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줄 것을 기대한다”며 제재 합류를 촉구했을까.



미국의 제재에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적용까지 포함돼 있다. 미국 밖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원천 기술이 포함됐다면 이를 수출할 때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미국은 제재에 미온적인 한국만 쏙 빼놓고 EU와 일본·호주 등 32개국에 대해 FDPR 면제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주권·영토 침해 행위다. 그런데도 러시아를 의식해 제재 조치를 미루다가 FDPR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장 미국 기술이 포함된 휴대폰·자동차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는 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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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나 중국·러시아 등의 눈치를 살피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의 의무를 게을리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외면하다가 2월 28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장외 규탄 성명에 뒤늦게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전 세계 43개국이 유엔에서 중국의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을 비난할 때도 한국은 불참했다. 이 같은 ‘회색 외교’ 행태가 계속되면 한미 동맹은 자칫 ‘이류 동맹’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동맹이 흔들리면 안보는 물론 경제 리스크도 커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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