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21C '찰나의 예술' 17C 미술과 마주하다

◆어윈 올라프 '亞 최대 개인전'

400년 前 네덜란드의 걸작들과

올라프의 사진작품 나란히 전시

신비로움 뿜어내는 치밀한 연출

거장의 유전자 그대로 옮겨온듯

수원아이파크미술관서 20일까지

어윈 올라프의 '희망5'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어윈 올라프의 '희망5'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우유 따르는 여인’ 등으로 유명한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친숙한 일상의 한 장면을 아주 특별한 순간처럼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우연한 포착처럼 보이지만 베르메르는 따뜻하고 찬란한 그림 분위기를 한껏 돋우기 위해 빛의 양과 바람의 방향, 테이블 위치와 선반에 놓인 물건들까지도 세세하게 고려했다. 거장의 영향은 수백 년을 관통해 어윈 올라프(63)에게 닿은 듯하다. 치밀한 배경 연출 속에 독특한 분위기로 인물을 담아내는 올라프는 공간 구성은 물론 벗어둔 옷가지나 마시다 내려놓은 음료수 병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한다. 진짜는 하나도 없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그의 작품은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상황, 마주쳤을 듯한 인물을 보여주면서도 신비로움을 뿜어낸다.




요하네스 코르넬리스 메르스프론크 '푸른 드레스를 입은 소녀'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요하네스 코르넬리스 메르스프론크 '푸른 드레스를 입은 소녀'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사진출처=네덜란드 국립라익스미술관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사진출처=네덜란드 국립라익스미술관


현대 사진계의 거장 올라프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인 ‘어윈 올라프: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오는 2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한국-네덜란드 수교 60주년 기념전을 겸한다.

전시의 도입부는 네덜란드 국립 라익스미술관이 소장품인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걸작 12점과 올라프의 작품 12점을 비교해 보여준 특별전으로 시작한다. 소녀의 푸른 드레스를 묘사한 1641년의 그림과 젊은 여성이 입은 노란 원피스의 선명한 색감을 표현한 작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훈계를 들으며 고개를 떨군 1654년 그림 속 소녀의 하얀 목덜미와 올라프가 열쇳구멍을 통해 본 소녀의 구부러진 등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특별하다. 네덜란드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라익스미술관의 화려한 소장품들을 보며 올라프에게 거장의 유전자가 그대로 옮겨간 듯하다. 타코 디비츠 라익스미술관 관장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23살 때 그린 자화상 옆에 나란히 배치한 올라프의 1985년작 흑백 인물사진 ‘헤니’를 비교하며 “올라프는 남성 모델에게 여성 모자를 씌우고 목을 길게 뻗으라 주문했다”면서 “렘브란트도 모델에게 목을 뻗게 해서 긴장감을 함께 보여줬는데, 올라프도 긴장감과 에너지를 사진에 담아낸다”라고 평했다.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훈계'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훈계'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어윈 올라프 '키홀3: 키홀시리즈로부터'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어윈 올라프 '키홀3: 키홀시리즈로부터'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신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던 올라프는 2000년 이후 철저하게 연출된 화면을 통해 사진 한 장에 긴 이야기를 압축해 담았다. 2005년작 ‘희망’시리즈에서 생각에 잠긴 주인공들은 어두우면서도 동화적인 기묘한 분위기 속에 휩싸인 채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흐느끼며 울고 있는 10명의 인물을 여러 각도에서 각각 포착한 2007년 ‘비탄’ 연작은 관객 누구나 그들 중 한 명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났거나, 아끼던 누군가를 잃었거나, 한없이 외로운 순간에 울어본 경험들이 공감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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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된 사진 속 장면에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별일 아닌 순간에 묵직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올라프의 특기다.

어윈 올라프의 2007년작 '트로이'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어윈 올라프의 2007년작 '트로이'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어윈 올라프의 '아메리칸 드림-알렉스와 자화상'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어윈 올라프의 '아메리칸 드림-알렉스와 자화상' /사진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를 보며 ‘비’(2004) 연작을 떠올린 올라프는 2020년 팬데믹을 겪으며 신작 ‘만우절’을 구상했다.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비워진 슈퍼마켓의 선반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모든 것이 항상 제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베를린,상하이,팜스프링스 등의 도시에서 촬영한 인물 사진 연작에서는 그 사회 젊은이들이 겪는 불안한 변화와 외로움을 포착했다. 작가는 이 또한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가로지르며 감각적으로 표현해 냈다. 고전 등 작품에 대한 경험이 많을수록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전시장에는 젊은 관람객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어윈 올라프의 '상하이' 연작.어윈 올라프의 '상하이' 연작.


수원=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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