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쇼핑몰은 죄가 없다

임석훈 논설위원

상생 이유로 대형유통 죄악시하던 與

野 '광주복합몰'이 민심흔들자 말바꿔

구시대적 발상으론 시장변화 못따라가

갈라놓기 아닌 붙여놓기해야 상권 활기





2013년 4월 서울시는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부지 3필지(2만 644㎡)를 롯데쇼핑에 1972억 원을 받고 팔았다. 롯데는 이곳에 복합 쇼핑몰을 지을 계획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을지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을지로는 ‘을(乙)을 위한 길’이라는 뜻으로 위원회는 두 달 후 ‘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당 홈페이지에 신문고를 개설했다. 이듬해 6·4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즈음부터 민주당 소속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쇼핑몰 허가를 미루면서 거친 말을 쏟아냈다. 2016년 11월 전국상인대회에 참석해 “상인들과 상생 없는 쇼핑몰은 서울시에 들어올 수 없다”며 “땅을 다시 사들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안은 2019년 감사원 감사로 이어졌고 감사원은 “서울시가 심의 절차를 부당하게 지연해 행정의 신뢰성이 훼손되고 기업의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다. 소비자 권리도 침해됐으며 일자리 창출 등의 기회 역시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19대 대선이 2개월여 남았던 2017년 2월 이학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이 신세계가 추진하던 광주 복합 쇼핑몰에 반대하며 이런 말을 했다.“신세계 복합 시설은 기본적으로 골목 상권, 전통 상권, 경제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그 일주일 뒤 을지로위원회는 반대 공문을 광주시 등에 보냈다. 그때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이재명 후보도 여기에 동조하면서 쇼핑몰은 없던 일이 됐다. 결국 인구 144만 명의 광주는 쇼핑몰 하나 없는 광역시로 남았다.

관련기사



광주에서나 서울에서나 민주당이 복합몰을 막아선 논리는 같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 유통 시설이 골목 상권을 해쳤다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연구 결과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년 이후 쇼핑몰이 지역 상권에 미친 영향을 분석(2020년 기준)한 보고서에 따르면 쇼핑몰이 들어온 뒤 해당 시군구의 사업체 수가 7.1% 증가했다. 또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가 2017년 신용카드 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사해 보니 대형 마트가 들어선 뒤 전통시장 고객이 되레 늘었다. 대형 마트로 옮기는 전통시장 고객은 4.9명인 데 비해 대형 마트를 이용하면서 시장을 함께 찾는 신규 고객은 14.6명이나 됐다.

무엇보다 유통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내 소비 시장에서 오프라인 매출 비중은 2015년 70%에서 지난해 51%로 급감했다. ‘새벽 배송’ 등 온라인 장보기가 활발해지면서 대형 마트 입지도 좁아지는 추세다. 유통 매출에서 대형 마트 비중은 지난해 15%로 2015년(26%)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프랑스·일본 등은 대형 유통 규제가 득보다 실이 많자 족쇄를 없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대형 유통 규제에 집착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규제법은 이동주 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10여 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규제 대상을 복합 쇼핑몰, 백화점, 면세점 등으로 넓히고 규제 범위도 전통시장 반경 1㎞에서 20㎞로 확대하는 법안도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를 공약하면서 쇼핑몰 문제가 지역 민심을 흔드는 이슈가 됐다. 표를 위해 민주당이 대형 유통 시설을 골목 상권을 죽이는 죄인 취급하며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편 가르기’ 했다는 비판도 많다.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민주당은 “복합몰을 반대한 적이 없다”고 물러섰다. 하지만 쇼핑몰 건립 여부를 이념으로 접근한 정치 집단의 몽니로 광주 시민들이 원정 쇼핑까지 가야 할 정도로 소비자 권익을 훼손당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시장은 급변하고 소비자들도 달라지고 있다. ‘대형 마트, 쇼핑몰을 막으면 전통시장이 산다’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지역 상인을 살리려면 ‘갈라 놓기’가 아닌 ‘붙여 놓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경제에도,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