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금수 조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많은 기업이 이미 자체적으로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운송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해 고공 행진 중이다. 미국은 원유 수출에 대한 직접 제재에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지만 러시아 에너지 산업을 겨냥한 고강도 제재 카드를 꺼내 들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목줄을 조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고려 중이냐는 질문에 “어떤 것도 테이블에서 배제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원유 제재)은 우리가 무겁게 저울질하는 일”이라면서 “여전히 논의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것은 글로벌 원유 시장을 무너뜨리거나 높은 에너지·가스 가격으로 더 많은 미국인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세드릭 리치먼드 백악관 선임고문 역시 “이(원유 제재)는 우리가 살피는 일이지만 당장 할 준비가 된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직접적 금수 조치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날 러시아 정유사들을 대상으로 원유 및 가스 추출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 정유 시설의 현대화를 지연시켜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라고 백악관 측은 설명했다. 백악관은 또 미 국무부가 러시아의 22개 국방 관련 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올려 무기 개발 등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들 기관에는 전투기, 보병 전투차량, 전자전 시스템, 미사일, 무인 항공기 제작 업체들이 포함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가 항공기뿐 아니라 러시아 국적 선박의 미국 입항도 금지할 것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미국은 아울러 유럽연합(EU)과 함께 벨라루스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수출 통제에 나섰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도운 러시아의 최우방이다. EU 이사회는 이날 벨라루스군 고위 관리 22명에 대한 EU 입국 금지 및 자산동결 조치를 발표했다. 또 벨라루스산 광물·담배·염화칼륨·목재·시멘트·철강·고무 관련 제품의 EU 수입도 금지했다. 벨라루스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WIFT는 오는 12일부터 러시아 은행 7곳과 러시아 내 자회사를 결제망에서 배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