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바이어가 주문생산한 제품의 인수를 거부했습니다. 미수금 발생에 재고까지 쌓여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시작하면 화장품 시장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러시아 사태가 또 터지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4일 러시아를 비롯해 동유럽·중앙아시아에 화장품을 수출하는 한 대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이날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가동한 ‘우크라이나 사태 중소기업 피해 접수 센터’에 10건이 넘는 피해가 접수됐다. 옥수수·콩·밀 등 곡물 공급 계약을 체결한 A사는 대금을 미리 70% 송금한 상태지만 물량 선적이 안 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화장품을 수출하는 B사는 13만 3000달러를 수출했지만 러시아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로 인해 대금 수령이 불가능하다. 금속 제조 업체인 C사 역시 결제망 제재로 인해 입금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C사의 한 관계자는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로 대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라며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한 수출 자금 지원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 외에도 러시아 주문이 모두 중단된 기업들이 애로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은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 현지 법인의 운영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는 등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리지는 모습이다.
러시아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 업체 D사의 관계자는 “아직 큰 타격이 오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에서 러시아 제재 강도가 높아지고 있어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면서 “추후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현지 법인의 운영 방안을 수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 시장을 발판 삼아 성장을 계획하던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보일러 업체들이 그 대표적인 분야다. 러시아의 보일러 시장은 연간 5~6% 커지고 있어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곳으로 꼽혔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보일러 업체 관계자는 “보일러가 수출 통제 품목은 아니지만 결제 문제 등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연 200억~300억 원가량 수출하는 러시아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원자재를 주로 수급해 오는 업체도 긴장감이 높아지는 건 매한가지다. 한 비철금속사 관계자는 “알루미늄 등 일부 원자재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들여온다”면서 “현재까지 수입 차질을 빚는 곳은 없지만 대러 제재가 계속되면 수급 차질이 올 수 있어 여러 방안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한 관계자는 “피해가 접수된 기업에는 수출·금융 등 유효한 수단을 보유한 기관이 신속히 지원할 것”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최신 정보 제공 등 서비스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