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가 다섯 달 연속으로 3%대를 기록한 것은 유가를 축으로 한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영향이 컸다. 원가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 가격 인상에 들어가 물가 전반이 오르는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국제 유가가 110달러를 넘어서는 등 원자재 가격 오름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어 고물가 기조는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원자재 가격 인상 등 공급 측면에서 물가 상승 요인이 두드러진다. 석유류 제품은 지난해 같은 때보다 19.4% 올랐는데 휘발유(16.5%), 경유(21.0%), 자동차용 LPG(23.8%)가 일제히 상승했다. 전기료(5.0%), 상수도료(4.1%), 도시가스(0.1%)도 모두 올랐다. 여기에 수요까지 늘면서 전체 물가 인상 폭이 커졌다. 수요 압력을 가늠할 수 있는 외식물가지수를 보면 전년 동기 대비 6.2% 늘었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당장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으로 국제 유가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07.7달러까지 오르며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국제 유가는 지속해 상승하고 있다.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에너지 수출입 거래 부문에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제재를 부과하거나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대규모 공급 중단이 발생할 경우 곧바로 150달러까지 에너지 가격이 치달을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 카드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번 2월 소비자물가 동향 조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작 전에 진행됐다. 3월 소비자물가부터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 고물가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2월 24일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2월 물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지정학적 요인이 가세하면 물가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의 가격 인상을 가능한 억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원가 부담을 사업자가 억누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근원물가 추이를 보면 지난해 11월 2.4%를 기록한 뒤 2.7%, 3.0%, 3.2%로 매달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근원물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업자가 비용 압박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 제품값에 전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대통령 선거가 맞물리면서 정치권에서 커지고 있는 확장 재정도 물가 불안 요인이다. 현재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선거 이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한 대규모 재정지출을 약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에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2011년 12월(4.2%) 이후 약 10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3.2%) 이후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쉽사리 해제할 것 같지 않다”면서 “유가가 100달러 선을 유지한다면 3%대 물가를 사수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