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에 한 달 만에 3조 원 가까운 뭉칫돈이 밀려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미국의 긴축이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달러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은행의 달러 예금이 불어난 것은 3개월 만이다. 안전자산인 달러에 투자하며 환율 상승에 따른 이익을 추구하는 이른바 ‘환테크’ 바람이 다시 불 것으로 전망된다.
6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지난달 말 달러 예금 잔액은 580억 4000만 달러로 지난 1월 말보다 24억 3200만 달러(약 2조 9600억 원) 불어났다. 5대 은행의 달러 예금은 지난해 11월 말 607억 1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10억 8600만 달러 늘어나며 정점을 찍은 후 2개월 연속 감소하다 이번에 증가세로 반전됐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달러 예금이 줄어든 것은 기업과 개인들이 환율이 오르자 차익 실현에 나서며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팔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달러 보유자들이 원·달러 환율 1200원을 기준선으로 꾸준히 차익 실현을 해 달러 예금이 줄어 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83원 37전에서 12월 1183원 78전으로, 올해 1월에는 1195원 30전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달 24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202원 40전으로 전일보다 8원 80전 급등했다. 이후로도 사태가 장기화하자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시장 참여자가 늘며 달러 예금 잔액도 불어났다. 이달 4일 환율은 1214원 20전에 마감하며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과 열흘 사이에 1% 가까이 환율이 오른 것이다. 이 외에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긴축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확산되는 점도 달러 예금 잔액을 늘리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보통 수출 기업들이 국내 거래 기업에 대금을 주기 위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데 지난달에는 당장 원화로 환전하기보다는 그대로 갖고 있다가 환율이 더 오를 때 환전하자는 분위기가 퍼졌다”며 “기업을 중심으로 달러 예금 잔액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환율이 상승하고 달러 예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시중은행들은 관련 이벤트를 열며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고객이 지정한 환율에 도달할 경우 자동으로 해지가 되는 ‘KB TWO테크 외화정기예금’을 취급 중인 국민은행은 이달 말까지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에게 환율 우대율 100%를 적용해 주고 있다. 일반 고객의 환율 우대율은 60% 수준이다. 농협은행도 이달 말까지 목표 환율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해지가 되고 도달하지 않으면 만기가 연장되는 ‘NH 환테크 외화회전예금’을 최근 출시했다. 가입하는 고객에게 추첨을 통해 경품을 주고 이달까지 모든 통화에 90%의 환율 우대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묻지마 환테크’에 나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율은 글로벌 투자은행(IB), 국내 경제연구소조차도 정확한 전망을 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무턱대고 달러 예금에 들었다가는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