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최악으로 기록될 울진·삼척·동해 산불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한 것은 올겨울 최악의 가뭄에 이어 강풍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이 중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이 단시간에 막대한 피해를 안긴 것은 상대적으로 침엽수가 많고 능선의 경사도가 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6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전국 강수량은 13.3㎜를 기록했다. 평년 89.0㎜와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전국에서 강수량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49년 만에 가장 적은 강수량이다.
산림청은 지난달 15일부터 전국 곳곳에 건조 특보를 발효했다. 특히 실효습도가 30% 이하면 산불 발생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수준인데 이번에 산불이 발생한 지역들은 대부분 30%를 밑돌았다. 가뜩이나 건조한 산림에 한때 초속 27m의 강풍까지 불면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는 분석이다.
동해안 지역에 침엽수인 소나무가 많이 식재된 것도 산불 확산세를 키웠다.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오래 타고 잔불도 길어 화재 진화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특히 울진과 삼척에는 대규모 금강송 군락지가 분포해 있어 이번 산불을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소나무 송진에 함유된 휘발성 성분인 테라핀이 강풍을 만나 일종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기록적인 강풍에 동해안 산림의 경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피해를 확산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나더라도 바람이 없으면 1분에 200m가량 번지지만 초속 6m의 바람이 불면 같은 시간 4㎞까지 확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풍이 불거나 경사도가 높으면 지표면과의 각이 좁아지고 산불 화염이 누워 버리기 때문에 산불 확산세가 더욱 거세진다는 얘기다.
동해안에 부는 양간지풍이 산불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높새바람의 일종인 양간지풍은 저온 다습한 공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넘으면서 고온 건조한 공기로 바뀌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바람이 동해안 쪽 급경사면을 타고 빠르게 이동해 소형 태풍급으로 강도가 세지고 수시로 풍향이 바뀐다. 2005년 낙산사를 태운 고성군 산불과 2019년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도 양간지풍의 영향이 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발생한 산불은 22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8건의 2배를 넘어섰다. 단일 산불 기준 역대 최악의 산불은 2000년 발생한 안동 산불이다. 당시 소실된 산림면적은 1944㏊였고 산림 피해액만 208억 9800만 원이었다.
중대본의 한 관계자는 “과거 안동 산불은 3일에 걸쳐 발생했지만 이번 울진·삼척 산불은 불과 하루 만에 인근 지역으로 번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다”며 “동해안 지역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