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기고]무조건 '규제' 아닌 신중한 법집행 필요한 때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총괄센터장

중대법 '경영책임자 규정' 모호

30년 이하 징역 등 과중한 처벌

창의적 기업활동에 위축 불가피

규제 수단으로 악용 될 가능성도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중재재해총괄센터장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중재재해총괄센터장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됐다. 법률이 정하는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전 보건 조치 의무를 게을리한 현장 관리자나 책임자를 처벌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매년 800명의 사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하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생명 존중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 경제적 성취가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기업가 정신 못지않게 수많은 현장 근로자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생명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미래의 고도화된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더욱 중요하다. 이 같은 점에서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는 공감한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산업 현장과 기업 현실에 뿌리내려 생명 존중이라는 궁극적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중대재해법에서 규정한 경영책임자 처벌, 모호한 법 규정에 대한 법리적·사회적 논란은 여전하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1월 열린 서울경제·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법 웨비나에 수천 명의 기업 임직원들이 접속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 내용을 설명하는 법무법인 팸플릿은 베스트셀러 이상의 인기를 끌었다. 정부 부처의 자료집은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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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법의 시행을 앞두고 법을 지켜야 하는 쪽에서 이처럼 폭발적 관심을 보인 경우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기업들의 뜨거운 관심 이면에는 처음으로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이 가진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한 달 동안 법 적용 사고(종사자 50인·건설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는 10건에 달한다. 사망 사고는 9건, 직업성 질병 사고는 1건이다. 기업과 산업계 관계자들은 중대재해 사고 발생 사업장에 대한 정부 등 유관 기관의 처리를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중대재해법을 위반했을 때 처벌받는 것은 경영책임자다. 하지만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가 법률상 명백하지 않다. 국내외에 여러 사업장 또는 공장을 가지고 있거나 결재 구조가 복잡한 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방파제 역할을 할 안전책임자(CSO) 직제를 신설하기도 하지만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 미칠지 누구도 확실히 답할 수 없다. 대법원의 양형 기준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법정형도 과실범 또는 결과적 가중범에 대한 처벌로는 지나치게 높다.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유사한 입법례를 찾기 어렵고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과도 많이 다르다.

법의 모호함과 과중한 처벌 규정은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은 낮추고 기업인의 불안감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창의적인 기업 활동에 있어서 예측 가능성과 기업인의 사기는 필수적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초기에 있을지도 모를 정부 기관 사이의 주도권 다툼으로 법 집행이 더 경직될까도 염려된다.

중대재해법이 기업 규제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법을 지켜야 할 기업의 동참 없이는 법 규범이 산업 현장에 뿌리내릴 수도 없다. 고용부·검찰 등 정부 기관의 신중하고 합리적인 법 해석과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는 법 집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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