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실패자 딱지는 코로나 지원도 박탈…험로 여전한 재도전”

◆정책금융기관 높은 벽에 좌절하는 재도전 기업인들

연대보증 전면 폐지·재기지원펀드 조성에도

‘패배자’ 낙인에 정책 기관 보증 막혀 곳곳 폐업

‘성실 실패’ 불구 사고 기록은 ‘블랙리스트’ 처리

中企 “재도전법 처리 지원 펀드 확대 필요” 제안





#. 10여 년 전 한 번의 큰 실패를 경험하고 재창업에 도전한 A씨. 그는 얼마 전 기술보증기금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30억 원 규모의 보증을 내주겠다던 기보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과거 사업이 무너질 때 발생한 8,000만 원의 기보 사고 이력이 문제의 이유였다. 어렵게 잡은 기회였던 탓에 A씨는 어떤 방법을 쓰든 변제 하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패자 부활 오뚝이 프로젝트로 중소기업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후보 시절부터 재도전·재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재도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창업 생태계 환경에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단 인식에서다. 정부 출범 후 나온 3,000억 원 규모의 ‘재기 도전 펀드’ 조성과 연대보증 전면 폐지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하지만 재도전을 시도하는 기업인들은 아직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고 지적한다. ‘손톱 밑 가시’와 같은 관행들이 곳곳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기술보증기금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이 ‘실패자’를 극히 꺼리는 행보는 대표적이다. 이에 관련법 개정을 포함해 관련 정책의 전반적인 보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련기사



◇‘실패자’ 딱지는 정책기금 ‘블랙리스트’=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재도전 기업인들은 정책금융기관의 높은 문턱을 벽처럼 느낀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A씨와 같이 과거 보증 기관을 대상으로 한 사고 기록은 ‘주홍글씨’처럼 남아 사실상 자금 조달을 막아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성실한 실패’도 분명 있는데 한 번의 사고 결과만으로 전체를 재단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심지어 과거 실패 유무를 먼저 따지는 행태는 ‘코로나19’ 지원 자격마저 뺏어가는 일도 발생한다. 건강제품업체 대표 B씨는 최근 서울 여의도 열린 재도전간담회에서 “긴급경영지원을 받으러 한 보증기관을 갔지만 과거 면책까지 끝난 일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업계는 관련 규정을 문제의 배경으로 지목한다. 현 기술보증기금법 및 신용보증기금법은 ‘부당하게 채무를 면탈한 기업’은 보증을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 기관들은 내부 지침을 통해 예전 사고 흔적이 있으면 ‘부당한 기업’으로 판단하고 일단 보증을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기관들은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 등으로 재기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반론한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재반박이다. 가령 ‘재도전 프로그램’의 경우 구상권 변제가 남아있는 등 자격 자체가 한정돼있다. 각 기금들이 연간 20조 원이 넘는 보증을 제공함에도 재도전 보증은 300억 원에 그치는 건 그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에 ‘실패는 자산’이라는 말은 아직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이 나서지 않으면 재창업 지원 무의미=재도전 기업인들은 사업을 정상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선 금융기관의 적극적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1억 원 가량의 정부 지원금을 발판 삼아 재기의 첫발을 떼더라도 추후 자금 조달이 막히면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창업진흥원의 ‘재창업 지원기업 이력 실태조사’를 보면 정부의 재도전 지원에도 또 폐업으로 접어든 기업들은 ‘자금조달 실패’(58.7%)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정부정책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응답이 33.3%로 순서의 첫머리를 차지했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느껴 ‘사실상 폐업’ 상태인 기업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가령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CT 패키지형 재도전 지원사업’의 경우 홍정민 의원실이 2015~2018년 지원받은 약 168개 업체를 조사해본 결과 현재 매출이 아예 없는 회사가 약 66곳, 매출이 5억 원이 넘는 회사 역시 9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억 원이 넘는 회사도 3곳에 그쳤다. 이 사업에 참가한 한 인사는 “민간 금융권에서 재도전 기업인들에게 무조건 보증서를 가져오라고 하지만 보증기관의 보증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며 “결국 재도전인들은 사채 등으로 갈 수밖에 없어 20~30%대 높은 이자 부담을 가진다”고 말했다.

◇“재도전법 개정 및 펀드 확대 필요”=업계에선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재도전법’으로 불린 기보법 및 신보법 개정안이 대상이다. 면책을 거치는 등 일부 조건에 해당하면 좀 더 포괄적으로 도전 기회를 주자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와 기금 건전성 훼손이 우려가 된다는 반론이 나와 각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한 기업인은 “여러 평가 방법을 고안해 우려를 최소화하면서 기회의 문을 넓힐 방법을 찾아야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폭넓은 재창업 지원을 위해 ‘재기도전펀드’의 확대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펀드 규모가 비교적 크지 않고 과거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인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지 않은 사례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김경만 의원실에 따르면 펀드를 지원받은 전체 282건 중 ‘실패 기업인’으로 분류될 법한 곳에 투자된 경우는 단 2건에 그쳤다. 이에 중기중앙회에서는 현 3,0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1조 원까지 확대하고 내실 있게 운용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완기 기자·박진용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