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원유·가스·석탄 등의 수입을 전면 차단하면서도 원자력 발전 연료인 우라늄은 금수조치 명단에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미국의 원자력 발전이 러시아산 우라늄에 막대한 의존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향후 러시아가 우라늄 수출을 서방 진영의 대한 보복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앞서 발표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 명단에는 원자력 발전용 농축 우라늄이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은 석유·가스 등 대다수 에너지에 대해 기존에 계약된 물량까지도 배송을 중단하도록 하면서도, 미국 전력 산업에서 수요가 높은 우라늄을 건드리지 못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미국 원전 우라늄 절반… 러시아 카자흐 등서 들여와
바이든 정부의 이같은 행보는 미국이 원자력 발전소용 우라늄의 절반을 러시아와 러시아의 동맹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신과 글로벌 원자력 연구소 등이 분석했다.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 및 석유제품 가운데 러시아산 비중이 약 8% 수준에 불과해 전격적인 금수조치 시행에도 큰 부담은 없었으나 원자력은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실제 원자력 산업 분석 회사인 UxC LLC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세계 원자력 발전소용 농축 우라늄의 약 35%를 생산한다. 특히 미국은 농춤 우라늄의 절반을 러시아와 러시아와 동맹국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들여온다.
조나단 힌즈 UxC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에 “러시아로부터의 우라늄 공급이 축소되면 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서방과 일본, 한국, 대만 등의 국가에는 농축 우라늄이 없기 때문에 미국은 러시아 농축 우라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은 농축 우라늄을 전량 수입해서 쓰고 있다. 풍부한 우라늄 자원과 생산 능력에도 불구, 가격 경쟁력 등으로 인해 미국의 우라늄 생산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전 세계 우라늄 지배권 쥔 푸틴의 ‘돈줄’ 로사톰
러시아의 우라늄 생산은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설립한 국영 기업인 로사톰(Rosatom·러시아 국영 원자력공사)이 도맡고 있다.
이 기업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및 운영 뿐 아니라 핵무기 제조 및 관리, 우라늄 수출 등을 영위하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원자력 회사다. 특히 러시아산 우라늄을 구매하는 국가에게는 방사능 폐기물질을 다시 수거해가는 등의 파격적인 판매 전략을 통해 해외 수출량을 늘려왔다.
원자력 업계에 따르면 로사톰은 직간접적으로 전 세계 우라늄 시장의 절반 이상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단적으로 전 세계 우라늄의 40%를 생산하는 카자흐스탄에서 다수의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 있는 캐나다 광산회사 ‘우라늄 원’이 바로 로사톰의 자회사다. 이 회사는 러시아의 끈질긴 로비전 끝에 지난 2009년부터 2013년에 걸쳐 로사톰에 인수됐다.
이처럼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이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돈줄’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러시아산 우라늄 금수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도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원자력 업계 “수입 금지 안된다” …일각선 “美 생산 재개해야”
바이든 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미국 원자력 업계의 로비전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전문매체 더힐과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원자력 업계는 미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 과정에도 우라늄 수입만은 허용하도록 백악관에 지속적으로 로비를 벌여왔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전력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로 백악관을 설득해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미국의 전력 시장에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은 약 20% 수준이다.
아울러 미국 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우라늄 생산을 재개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텍사스와 와이오밍 등에는 이미 상당한 양의 우라늄이 매장돼 있으며, 미국의 우방인 호주와 캐나다 또한 대규모의 우라늄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로이터는 전 세계 다른 전력 회사들이 이미 러시아 이외의 지역에서 우라늄 공급원을 찾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스웨덴 에너지 국영기업 바텐풀(Vattenfall AB)도 최근 러시아 우라늄과 핵연료 주문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