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 허울뿐인 초강대국, 러시아

■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세계 최고수준 군사력이라더니

우크라이나군 거센 저항에 고전

'마지막 패' 가스 무기화도 시들

금융제재로 경제 치명상 입을 것





블라디미르 푸틴은 다가오는 봄을 조심해야 한다. 봄이 오면 푸틴은 손에 쥐고 있는 마지막 패마저 잃게 될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리는 러시아에 관해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푸틴은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점과 러시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체라는 것이다.



푸틴이 강대국으로서의 위상 회복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거센 후폭풍을 불러온 연설에서 푸틴은 이웃 국가에 민족적 정체성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레닌을 공격했다. 이를 통해 그의 목표가 소련연방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차리스트 제국의 재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 그의 목표를 향해 내딛는 중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초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예상보다 강했고 러시아 군의 위력은 알려진 것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영국이나 프랑스 GDP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러시아의 경제력은 전쟁 이전보다 점차 약해질 것이다. 푸틴은 국제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무뢰한의 반열에 스스로를 올려 놓은 유일한 독재자가 아니다. 서방권에 정통한 정치 엘리트들을 거느린 채 국제 상거래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이끄는 최고 통치자들 중 스스로를 왕따시킨 인물은 푸틴이 처음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북한과 구소련처럼 폐쇄된 독재국가가 아니다. 생활 수준은 대부분 오일과 천연가스 수출 대금으로 사들인 제조업 상품들에 의해 유지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 경제는 국제 상거래를 옥죄는 제재에 대단히 취약하다. 국내 금리를 대폭 인상하고, 자본 도피를 제한하는 극약 처방에도 불구하고 루블화의 가치가 폭락한 것이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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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푸틴이 군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축적하는 등 러시아를 외부의 제재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경제 요새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그러나 외환 보유고는 대부분 해외 은행 예치금과 외국 정부 채권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 불량 국가에 국제 경제 제재가 단행되면 즉각 동결될 자산이다.

게다가 러시아 재벌들이 소유 자산의 대부분을 해외에 은닉해둔 만큼 민주국가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이들의 자산을 동결하거나 압수할 수 있다. 사실 러시아는 국가 경제를 운용하는 데 재벌들의 자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권 이후 푸틴은 재벌의 지지를 중요시했고, 그들과 공생 관계를 구축했다. 따라서 그들의 취약점은 바로 푸틴의 취약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의 러시아 국력에 관한 한 가지 궁금증은 ‘도둑 정권(kleptocracy)’이 무슨 수로 막대한 예산이 소용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혹시 러시아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은 아닐까.

아직도 푸틴이 손에 쥐고 있는 패가 하나 있기는 하다. 유럽이 주요 에너지원인 천연가스의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푸틴은 유럽 국가들이 그의 도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유럽은 천연가스를 주로 난방에 사용한다. 여름에 비해 겨울의 가스 소모량이 2.5배나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겨울은 곧 끝난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다음번 겨울까지 월동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 다소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없이 겨울을 날 수 있는 난방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푸틴은 조만간 키이우를 수중에 넣을지 모른다. 그러나 푸틴의 국내외 입지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약화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드러난 러시아의 현주소는 보기보다 국력이 약한, 허울뿐인 초강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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