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인수위 두달에 성패…"박근혜 봉투인사·MB 어륀지 사태 교훈 삼아야"

[윤석열 시대-첫단추 끼운 인수위]

점령군 행세땐 이전 정부와 갈등 커지며 실패 가능성 높아

실력 중심으로 사람 뽑는다지만 특정지역 편중 지양해야

인수위원 돌발발언 단속하고 숙성안된 정책 공개도 금물

지난 2012년 1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1차 인수위 인선안이 담긴 봉투를 뜯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012년 1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1차 인수위 인선안이 담긴 봉투를 뜯고 있다. 연합뉴스




“밀봉을 해왔기 때문에 저도 이 자리에서 (뜯어보고) 발표를 드렸다.”



지난 2012년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의 윤창중 수석대변인이 노란색 서류 봉투에서 A4지 세 장을 꺼내 한광옥 인수위원장, 진영 부위원장 등 인사를 발표한 뒤 한 말이다. 윤 수석대변인은 종이에 적힌 내용을 제외한 다른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인수위 인사들은 새 정부의 국정 밑그림을 그리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국민은 인수위원 명단을 보고 대통령의 인사 철학을 가늠한다. 국민이 인사 배경과 운영 구상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이유다. 박근혜 당선인 측의 일방적 인사 발표는 ‘봉투 인사’로 불리며 불통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등 인사를 직접 발표했다. 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하며 인사 배경과 향후 구상을 상세히 설명했다. 2012년과 대비해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도 윤 당선인이 인수위 추가 인선과 운영에서 역대 인수위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만약 인수위가 인사 실패, 정책 혼선 등 논란에 휩싸이면 정부 성패까지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부위원장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여소야대 정국이라서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인수위가 삐그덕거리면 지방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위가 선거 승리에 취해 점령군 행세를 하면 100% 실패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권 교체기의 이명박 인수위다. 당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이명박 인수위는 정부 업무 보고 과정에서 기존 정책에 대해 각을 세우며 갈등이 번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수위는 기존의 정책이나 당선자의 공약에 찬반을 강요하거나 호통치고 반성문 같은 것을 받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라며 파열음이 났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장 출신인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인수위는) 국정의 방향과 철학을 선별하고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들어가는 사람들의 자세나 준비 등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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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이경숙(가운데) 인수위원장이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속개된 인수위 간사단회의에서 김형오 부위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2007년 12월 27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이경숙(가운데) 인수위원장이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속개된 인수위 간사단회의에서 김형오 부위원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인수위 인사 출신·지역의 분배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 당선인은 실력 중심의 인사 방침을 분명히 했으나 결과적으로 캠프 인사가 중용되거나 특정 지역 인사가 과다할 경우 오해를 빚을 수 있다. 이명박 인수위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 논란이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인수위원 14명 중 13명이 현역 의원이었던 김영삼 인수위가 ‘줄서기, 권력 다툼’이 극심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참고할 만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금까지 발표된 윤 당선인의 인수위원들은 캠프 중심 인물들”이라며 “인수위의 50% 정도는 캠프 인사라고 해도 나머지는 해당 분야의 새로운 전문가를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 인사들의 돌발적인 발언도 단속해야 할 사항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명 ‘어륀지’ 논란이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장인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이 “오렌지 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어륀지’ 이러니까 ‘아 어륀지’ 이러면서 가져오더라”면서 ‘영어 몰입 교육’을 주장했지만 결국 온갖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책은 계획을 세우지도 못한 채 철회된 바 있다.



숙성되지 않은 정책이 알려지는 것도 방지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 당시에 당시 ‘공기업 임원 잔여 임기를 보장한다’ ‘정부 기구인 ○○를 ○○ 산하에 둔다’는 등의 보도가 잇따르며 혼선을 빚었다. 이에 노 대통령 당선인조차 “아침에 신문을 보면 인수위가 모든 것을 뜯어고치는 것처럼 비쳐 나 자신이 혼란스러운데 국민은 얼마나 혼란하겠느냐”고 걱정했다. 김 전 의장은 “뭔가 새로운 정책을 내려고 하고 지난번과 다른 정책을 보이려고 그러면 안 된다”며 “겸손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인수받을 것을 인수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선인이 인수위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당선인이 직접 인수위를 끌고 가며 철학과 의중을 실현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노 당선인이 매주 인수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분과위별 정책 간담회에도 직접 나섰던 것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반면 박 당선인은 전임자들과 달리 인수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교수는 “윤 당선인은 안 위원장과 공동 정부를 하기로 했으니 공동으로 회의 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당선인 비서실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긴밀한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비서실이 취임 전 당선인의 행보를 주도할 경우 인수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전 의장은 “당선인 비서실이 비대해져 걱정”이라며 “비서실과 인수위가 이원 체제로 가면 인수위가 껍데기가 된다”고 말했다.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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