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새 대통령에 바란다] 제대로 된 연금개혁부터

◆윤석명 전 한국연금학회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캐나다 200년·일본 100년 후도 지급 가능

한국은 2056년 국민연금 고갈 우려

전문가·언론 함께 공론화 앞장서

현실성 갖춘 개혁안 만들어가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후보들이 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합의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가 고령화 속도는 제일 빠르고 출생률은 가장 낮다. 낮아도 너무 낮아 외국 전문가가 믿기 어려워할 정도다. 어느 나라보다 강도 높은 연금 개혁이 필요한 배경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난 2007년 반쪽짜리 국민연금 개혁 이후 25년을 허송세월해왔다.

더욱이 월 10만 원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출발한 기초(노령)연금이 선거 때마다 인상돼 월 30만 원을 넘어섰다. 10만 원 인상 공약이 실행될 경우 15년도 되지 않아 4배 이상으로 연금액이 인상된다. 기초연금 지급액 증가로 2007년 개혁 효과가 무색할 정도다. 연금 개혁을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연금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으로 불리던 개편안이 실상은 개악이었고 정작 개혁안은 개악으로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을 제외하고 연금 공약이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자칫 연금 논의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이는 연금 논의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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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락한 출산율을 일부 반영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재정 추계 결과는 연금 재정 상태가 매우 악화됐음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은 오는 2056년 기금이 소진된 후 2092년까지 누적 적자가 경상가로 2경(현재가로 700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4년 전 정부의 국민연금 재정 계산과 비교하면 60년 후의 부과 방식 보험료가 10%포인트 이상 늘어나 4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비교하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대선 공약인 40만 원으로 인상하지 않더라도 2020년 17조 원 수준인 기초연금 지출액이 2050년 120조 원, 2080년에는 306조 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으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국가부채가 1000조 원을 넘어섰고 향후 재정 불안정이 가장 심각할 사학연금까지 포함하면 총체적 난국 그 자체다.

이러한 우리 상황과 달리 캐나다는 200년 후에도 연금부채가 없다. 일본은 100년 후에도 지급할 돈이 있다. 연금 재정 불안정을 걱정하는 미국은 매년 75년 기간에 대한 추계 외에 무한대 기간에 대해서도 연금 지속성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우리보다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나은 미국도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사회보장청이 매년 의회에 제출하고 있다. 제대로 빨리 개혁해야 수급자와 가입자가 준비를 할 수 있으며 세대 간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바다로 흘러든 강물을 상류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개혁은 늦출수록 선택지가 없어진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보고서가 필요한 이유다. 오염되지 않은 전문가들이 관련 부처의 협조를 받아 팩트 위주, 최신 연금 개혁 동향을 수록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사이비가 아닌 진짜 전문가들이 연금개혁안을 만들어가면서 언론사와 내용을 공유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 연금개혁안의 현실성과 적합성을 전문가와 언론이 공유하면서 공론화할 수 있어서다. 2004년 성공적인 연금 개혁을 달성한 일본이 채택했던 방식이다.

이렇게 마련된 팩트 보고서와 개혁안을 기초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논의 초기 단계에서 이해 관계자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얼개가 나온 뒤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연금 개혁이라는 배가 산으로 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국제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돼야 한다. 이미 사라진 특정 국가들의 연금제도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연금 개혁 논의를 무력화하는 경우가 흔해서이다. 오염되지 않은 전문가들의 세대 간 형평성, 지속 가능성, 글로벌 연금 개혁 추세를 반영한 객관적인 보고서 작성 기회를 보장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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