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구태의 뇌과학] 쾌와 불쾌, 그 숨겨진 비밀

한국뇌연구원 연구원

행복과 불행은 뇌가 만드는 알람

친구와 밥먹고 대화하는 것만으로

꺼져있던 행복 스위치 올릴수 있어

즐거움, 먼 곳에서 말고 일상서 찾길








인간의 두뇌는 전체 몸무게 중 대략 2%를 차지하지만 전체 열량의 약 20%를 소비하는 조직이다. 이 작은 생체 컴퓨터는 마치 마법사처럼 우리 마음의 모든 내용을 만들어낸다. 보고 듣고 맛보는 단순한 감각에서부터 복잡한 생각까지 우리 마음의 모든 내용은 궁극적으로는 뇌가 만들어내는 한바탕 불꽃놀이와 같은 소동이다. 이 중 우리를 가장 흔들어 놓는 것은 무엇보다 감정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 키스를 할 때의 즐거움(쾌)은 하늘을 나는 것 같지만 그와 헤어질 때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불쾌)은 우리를 깊은 나락으로 처박히게 한다. 그렇다면 이 쾌(행복)·불쾌(불행)의 본질적인 정체는 무엇일까. 순전히 뇌의 관점에서 보면 누군가 느끼는 쾌와 불쾌의 감정은 그가 처한 상황이나 경험이 그의 생존 또는 번식에 얼마나 유리 혹은 불리한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신호(signal)다. 첫 키스를 할 때 우리 뇌는 ‘번식 가능성 높아짐(쾌)’이라는 신호를 켠다. 이별은 반대로 ‘번식 가능성 낮아짐(불쾌)’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뇌의 관점에서 행복과 불행은 결국 이처럼 단순하다. 생존과 번식 가능성의 변화를 나타내는 쾌와 불쾌의 신호. 이런 일차원적인 정의가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애초에 명확하게 정의돼 측정할 수 있는 영역만이 과학에 주어진 영토라고 변명하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에 관한 단순하고 소박한 정의는 행복에 대해 매우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친한 친구들과 만나 진하게 한잔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시간이 지나 늦게까지 얼큰하게 취한 친구들 사이의 이야기는 결국 직장 혹은 가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이에 따른 스트레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뒷담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행복은 이렇게 사회적 요인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왜 그럴까. 사회를 계약으로 봤던 근대 철학자들의 가정과는 달리 우리는 애초에 사회적인 동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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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유럽에 최초로 진출한 5만 년 전쯤을 상상해보자. 춥고 축축한 유럽의 어두운 숲에 놓인 어느 한 사람.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가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충 150여 명의 집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사회적 협력을 통해 온갖 동물들을 사냥하고 그들의 영웅적인 모험에 대한 서사시를 후손에게 전달한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의 좋은 관계는 생존과 번식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반대로 말하면 집단에서의 따돌림, 사회적 지위의 약화, 나쁜 평판은 죽음과 번식의 실패를 예측하는 강력하고 불길한 신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승진에 뛸 듯이 기뻐하고 동료들의 악담이 죽도록 힘든 이유다.

행복과 불행이 뇌가 만드는 일종의 알람이라는 점은 외적 조건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돈의 부족이 불행과 불안을 낳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 주에 갚아야 할 대출 이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면 어떻게든 돈이 생기게 되면 이 불행이라는 알람을 끌 수 있을 것이고 잠깐은 행복한 기분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한 달 후에도 행복한 기분이 유지될까. 아마 아닐 것이다. 불행이 없다는 것이 행복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불행의 알람을 끄는 것이 자동적으로 행복이라는 신호를 켜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이 일종의 알람이라면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행복의 알람을 켜지게 하는 즐거운 행동을 자주 반복하면 된다. 다행히 이 알람은 생각보다 쉽게 켜지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만나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같이 걷는 행동만으로도 행복의 스위치는 올라간다. 우리의 생각은, 그리고 사회는 우리가 대단한 성공을 누려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큰 힘으로 스위치를 누르면 알람 소리가 조금 더 커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뿐이고 알람은 곧 꺼지고 평상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작은 힘으로도 행복의 스위치는 쉽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주 켜질 수 있다. 결론은 항상 어디선가 듣던 이야기다. 지금의 행복을 굳이 포기하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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