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전문 체육 황폐화 안된다

■박민영 골프팀장

'여가·산업·국민 통합'의 가치 큰데

생활체육 편중에 경쟁력 약화 우려

학생선수 다양성·자율 위축도 초래

상생 위해 체육계·새정부 힘모아야


중학교 2학년인 H 양은 이른바 ‘박인비 키즈’다.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졸라 골프를 시작했다. 아침에 등교하고 방과 후에는 교외에 있는 골프장이나 연습장으로 달려가 구슬땀을 흘린다.

H 양의 꿈은 프로 선수가 돼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앞날에는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22년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 기본계획’에 따르면 학생 선수의 출석인정 결석 허용 일수는 초등 5일, 중학교 12일, 고교 25일이다. 지난해의 각각 10일, 15일, 30일에서 더 줄었고 그가 고교에 진학할 때쯤이면 이마저도 전면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평일에 열리는 대회 출전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건상 주말 대회 개최가 불가능한 종목 선수들은 방송통신고 진학이나 해외 유학을 선택하고 있다. 실제로 고등학생 골프 선수 중 주말에만 등교하면 되는 방송통신고 재학 비율이 30%가 넘는다고 한다. 주말 리그와 운동부가 있는 단체 종목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과 고민이 크다.

체육계에서는 현 정부의 생활 체육 강화 정책 속에 엘리트 체육이 황폐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 육성이라는 취지에 대항할 논리를 찾기란 쉽지 않지만 학생 선수가 엘리트 체육의 토양인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엘리트 스포츠, 즉 전문 스포츠는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분야다. 과거처럼 올림픽 메달에 목을 매는 정서는 아니라고 해도 스포츠는 시대에 맞는 가치와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전문 스포츠는 국민의 건전한 여가 활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산업이며 프로 리그는 스포츠 산업의 꽃이다. 전문 스포츠의 황폐화는 리그의 질적 저하와 팬들의 외면을 불러 스포츠 산업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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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국민 통합 기능이다. 스포츠는 모든 장벽과 장애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언어이자 공통분모다. 얼마 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도 입증됐다.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이념·성별·세대·지역의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양성과 자율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학생 선수는 운동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권리가 있다. 학습권 보장이라는 의도가 오히려 학생 선수들을 학교에서 내몰 수도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H 양의 아버지는 “공부로 꿈을 이루려는 아이도 있고 운동으로 꿈을 이루려는 아이도 있다. 학생·학부모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석 허용 일수를 줄이거나 폐지하는 것은 학생 선수의 성공 사다리를 없애는 차별”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는 체육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스포츠는 대한민국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국민께 감동과 희망을 줬다. 국민 통합과 화합에 기여했다”며 스포츠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 “전문 체육과 생활 체육을 편가르지 않고 스포츠계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워 체육인의 자부심을 되찾겠다”고도 했다.

물론 엘리트 체육의 육성에는 뼈를 깎는 자아 성찰과 엄격한 제3자의 감시 감독이 따라야 한다. 체육계가 엘리트 체육의 위상을 스스로 잃어간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돼 불거져온 가혹 행위와 성폭행, 승부 조작 등 잘못된 관행과 비리 등이 그것이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의 체육 분야 공약은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엘리트 체육’이 아닌 ‘전문 체육’이라는 용어 선택에서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는 듯하다. 생활 체육과 전문 체육의 상생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통합과 건강 증진 등 시대가 요구하는 스포츠 가치의 실현을 위해 체육계와 정부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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