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1인 독재가 실패하는 이유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폐쇄적인 권력 탓에 정책·정보 왜곡

억압에 밀려 인재들 해외로 떠나고

무능한 관료도 충성심 높으면 출세

결국 경제성장 둔화 등 쇠락의 길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체제 사이의 투쟁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시대를 규정짓는 충돌이라고 주장한다. 올바른 지적이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쪽이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할까.

지난 몇 년 동안 전제주의 시스템은 민주정체에 비해 한 수 위의 효율성을 과시했다. 전제주의는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는 중앙집권적 통치 시스템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위기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고 필요한 곳에 과감하게 자원을 배치할 수도 있다. 중국은 중앙집권적 전제주의 체제를 십분 활용해 대중의 번영을 끌어낸 대표적인 국가다. 중국의 성공 신화 이후 전제주의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은 반면 민주주의의 기세는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전제주의 체제에서 권력이 중앙으로 몰리는 것과 정반대로 권력 분산의 원칙을 고수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종종 극단적인 양극화, 혹은 국정 마비 현상까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정치 제도는 불신받고 있고 때로는 아예 기능이 마비된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자생적인 독재자가 백악관에 입성했다든지 ‘민주주의 사망’과 같은 서적이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몇 주는 우리의 눈에 잡히지 않던 많은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 면에서 전제주의는 심각한 취약점을 노출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민주 체제의 우월성이 아니라 전제주의 정권의 무능과 불안정성에 대한 현실적 평가였다. 그렇다면 전제주의 체제의 취약점이 대체 무얼까.



다중의 지혜가 몇몇 과대망상가들의 지혜보다 낫다는 것이다. 어떤 체제에서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은 정보의 흐름이다. 민주국가의 경우 정책 결정은 대개 공개적인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전문가들이 ‘팩트’와 ‘오피니언’을 쏟아낸다. 지난해 많은 경제학자는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래리 서머스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은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했고 결국 그들의 생각이 옳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여전히 숱한 실수를 저지르지만 민주적인 시스템은 이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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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주의 국가에서 정책 결정은 폐쇄적인 소집단에 안에서 이뤄지고 정보 흐름은 권력에 의해 왜곡된다. 그 누구도 최고 지도자가 듣기를 원치 않는 정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 관한 러시아의 정보 실패는 놀랄 정도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대항할지, 부패와 도둑 정치가 러시아군의 전투력과 사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대중은 늘 최상의 삶을 원한다. 오늘날의 인간은 누구나 길고 부유한 삶을 살고 싶어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를 원한다. 자유의 이상은 개개인이 각자 자신의 이상을 구축하도록 간섭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다. 반면 전제주의 시스템은 질서를 위해 자유를 제한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러시아의 가장 명석한 두뇌들이 대거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일본 주재 미국 대사인 람 이매뉴얼의 지적대로 홍콩 역시 두뇌 유출로 몸살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앞으로 수년에 걸쳐 교육, 헬스 케어, 심지어 금융 분야의 두뇌 유출에 따른 영향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미국 연구 기관의 1등급 인공지능(AI) 연구원들 가운데 절반은 중국인, 나머지 절반은 현지인이다. 이처럼 기회가 주어지면 재능 있는 인재는 언제든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전제주의 체제에서 국가기관의 조직원은 갱단 멤버로 변한다. 이들은 관료 조직에 대한 무분별하고 가차 없는 충성을 통해 출세의 계단을 밟아간다. 그런데 이 무분별한 충성심이 문제다. 자신보다 더 가차 없고 무분별한 충성심을 보이는 경쟁자들을 의식하면서 점점 더 편집증적이고 전제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그들은 종종 권력을 사유화한다. 따라서 그들이 국가이고 국가가 그들이다. 반대는 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은 학자들이 말하는 ‘부정적 선택(negative selection)’을 실천한다. 또한 그들은 최고의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멍청하고 가장 평범한 자들을 고용한다. 러시아군 지도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듯 정부는 3등급 인사들로 채워진다.

민족주의는 자기도취적인 특징을 지닌다. 민족주의의 열기에 취하면 누구나 무엇인가를 숭배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국가 숭배는 진보적 이상 추구에 의해 균형을 잡는다. 국가 숭배가 특정한 가치라면 진보적 이상은 보편적 가치다. 공산주의의 사멸과 함께 전제주의는 보편적 가치의 주요 공급원을 상실했다. 국가의 영광을 추구하게 만드는 발판은 도취적인 근본주의다.

푸틴은 지난해 “나는 성인과 순교자들이 당한 수난의 가치와 수난 이론을 신봉한다”며 “우리 모두는 무한한 유전자 코드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다. 수난 이론의 창시자인 러시아 민족학자 레프 구밀료프는 모든 국가는 자체적인 수준의 정신적·이념적 에너지와 확장 의지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러시아가 여러 면에서 예외적이며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종류의 기이한 민족주의는 국민으로 하여금 그들의 역량으로는 성취가 불가능한 야망을 추구하게 만든다.

국민에 대적하는 정부는 쇠락하기 마련이다. 민주적 지도자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들의 선거구민을 섬긴다. 반면 전제주의적 지도자들은 실질적으로 그들의 정권과 정권의 장수를 위해 일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면 언제든 국민의 이익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다. 토머스 J 볼리키, 타라 템플린과 사이먼 위글리의 공동 연구는 최근 전제주의 체제로 전환한 국가의 국민 기대 수명 증가 속도가 얼마나 둔화됐는지 보여준다. 70개국을 대상으로 400여 명의 독재자를 추려내 연구한 리처드 종아핀과 요헌 오 미에라우는 독재자의 나이에 1년이 덧붙여질 때마다 국가의 경제성장이 0.12%포인트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소련의 경제와 군사력을 과대평가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련의 예에서 보듯 중앙집권적 권력을 통해 거대한 사회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중국처럼 성공 신화를 써 가고 있는 전제주의 국가와 마주할 때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신뢰해야 한다. 제국주의자인 푸틴과 같은 인물을 대할 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취하고 있는 대응 방법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거리낌 없이 경제적·기술적·정치적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면 전제주의 정권에 내재한 약점은 점점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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