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대출 옥죄기’로 지난해 대출 문턱을 높였던 은행들이 속속 대출 빗장을 풀고 있다. 전세대출 한도 확대에 이어 금리까지 낮춘다. 최근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수개월째 감소세인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내놓은 예대금리차 공시 공약이 은행들의 가산금리를 겨누고 있는 만큼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24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25일부터 모든 전세자금 대출 상품의 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한다. 이날 신규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를 지표로 한 신한은행의 전세대출 금리가 3.30~4.20%, 금융채 1년물 기준으로 3.48~4.38%인 점을 고려하면 25일부터는 각각 3.20~4.19%, 3.38~4.28%대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시중은행 가운데 올해 전세대출 금리를 낮춘 곳은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다. 앞서 우리은행은 오는 5월 31일까지 전세대출 상품과 주택·주거용 오피스텔 담보대출에 연 0.2%포인트의 ‘신규 대출 특별 우대금리’를 신설해 금리 인하 효과를 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아직 전세대출 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미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전세대출 한도를 ‘전체 보증금의 80%’로 원상 복구하는 등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모두 풀었기 때문에 전세대출 금리 인하 움직임도 전 은행권으로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는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금리도 인하했다. 카카오뱅크는 이날부터 중신용 대출과 일반 전월세 보증금 대출 상품의 최저금리를 각각 0.50%포인트, 0.20%포인트 인하했다. 전날 4.067%였던 중신용 대출 금리는 3.578%, 일반 전월세 대출 금리는 3.082%에서 2.882%로 인하됐다. 중신용 대출은 연 소득 2000만 원 이상, 재직 기간 1년 이상인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로 최대 대출 한도는 1억 원이다. 일반 전월세 보증금 대출은 무주택 또는 부부 합산 1주택 보유 고객을 대상으로 전세 보증금의 최대 80%, 2억 22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이번 조치는 일단 최근 가계대출이 수개월째 감소세를 보이면서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강화해온 시중은행들이 ‘유연한’ 관리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5조 9373억 원으로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서도 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 1000억 원으로 1월 말보다 1000억 원 줄어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째 감소세다.
다만 대출 상품의 준거 금리인 코픽스와 금융채 금리가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금리를 인하하는 등 대출 문턱을 낮추는 것은 최근 은행권에서 불거진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논란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윤 당선인도 예대금리차가 확대돼 금융 소비자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면서 예대금리차 축소와 공시 의무화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 상황이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가감조정금리로 구성된다. 가산금리는 은행들이 대출금리 산정 과정에서 업무·위험 비용 등을 명분으로 지표금리에 덧붙이는 부분인데 가산금리를 크게 올릴수록 은행들의 예대마진도 늘어나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픽스 등 지표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그만큼 가산금리는 낮추는 대신 차주들이 더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월 기준 신규 취급액 코픽스는 1.70%로 전월 대비 0.06%포인트 상승했다. 1월 코픽스 금리가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했지만 한 달 새 다시 상승 전환하며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