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허용된 가운데 영세·중소업체와 완성차업체를 각각 대표하는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간 자율조정이 난항으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완성차 업체와 중고차 업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현대차·기아차 등 대기업의 연내 진출이 불발될 수 있어 주목된다.
29일 중소벤처기업부와 중고차 업계 등에 따르면 중고차판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며 내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피해 대책을 놓고 영세·중소업체와 완성차업체 간 자율조정이 팽팽히 맞서며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자율조정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현대차 등 완성차 대기업의 매집 제한과 중고차 업계에 대한 신차판매권 부여다.
세부 합의안 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은 중고차 매집 대수를 결정하는 전체 물량 기준이다. 완성차 업계는 사업자 간 거래매물을 포함한 실거래 물량인 250만대 중 10%인 약 25만대를 취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고차 업계는 사업자 물량 130만대의 10%만 허용(개인간 직거래 120만대 제외))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신차판매권 부여는 완성차가 강하게 거부해 협의에 또 다른 장애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완성차 업계가 5년·10만㎞ 이하 매물만 취급하겠다는 조정안에는 큰 틀에서 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중기부는 자율조정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현재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고차 업계와 완성차 업계간 자율조정 과정에서 극명한 입장차를 보여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완성차 업계의 진출을 허용한 상황이라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대한 양측의 입장이 반영된 대안을 마련하겠지만 만약 자율조정에 실패한다면 완성차 업계의 연내 진출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중고차 업계는 두 쟁점에 대해 합의하지 않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의 사업진출로 영세·중소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끼쳐,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심위회가 허용조건으로 내건 만큼 완성차 업체는 두 쟁점에 대해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중고차 단체인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완성차 업체들이 신차 판매뿐 아니라 중고차 매매업까지 직접 할 수 있게 되면 독과점 체제가 더욱 공고해져 모든 피해는 소비자와 영세 사업자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완성차 업계는 고품질의 중고차 시장을 겨냥할 뿐 기존 중고차 사업자의 차별화로 상생을 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분별한 사업 진출이 아니며, 중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고, 자동차 업계의 생태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심해 대표적인 '레몬마켓'(저품질의 제품만 판매되는 시장)으로 불리는 국내 중고차 시장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소비자 권익 증진의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했다.
공은 또 다시 중기부로 넘어간 모습이다.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으로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매매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원칙적으로 열렸지만 바로 해당 사업을 개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율조정 타협점이 도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를 한다면 처벌해야 한다”며 “다만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로 혁신과 산업 발전이 이뤄지고 시장 규모가 커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