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과학계 '러시아 보이콧'에…우주·기후연구도 쪼그라든다

각국 정부·기관 "러시아 공동연구에 연구비 안 줘"

유럽우주국, 공동 화성탐사연구 '엑소마스' 중단

북극 연구도 타격 불가피…첨단연구 협력 단절 우려

ESA가 개발 중인 탐사선에 달린 카메라의 모습. ESA 홈페이지ESA가 개발 중인 탐사선에 달린 카메라의 모습. ESA 홈페이지




세계 각국의 정부와 연구기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탄하며 러시아와의 연구 협력을 속속 중단하면서 과학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우주·북극·원자력 등 러시아가 경쟁력을 발휘하는 분야의 연구가 크게 위축되거나 아예 중단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경과 이념을 넘어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인 과학 연구의 특성을 고려해 러시아 과학계와 최소한의 협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러시아와의 연구 협력 중단 선언이 잇따르면서 과학 분야의 국제 공동 연구가 정체될 위기라고 29일 보도했다.

관련기사



보도에 따르면 독일 최대 연구비 지원 기관인 ‘독일과학기구연합’이 지난달 25일 러시아와 모든 과학적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영국 정부도 각각 이달 4일과 27일 러시아와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한 연구비 지급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각국 기관들의 개별적인 ‘러시아 손절' 움직임 또한 거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 최대 국제 연구기관 중 하나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9일 러시아와의 신규 연구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러시아의 옵서버 자격까지 박탈했다. 러시아 연구진이 옵서버로서 CERN에서 진행되는 각종 연구와 공개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달 26일 노르웨이에서 개막한 ‘북극과학최고회의’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북극 연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러시아 연구 단체의 참여를 불허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한다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움직임에 대한 학계의 시선은 우려로 가득 차 있다. 우주·원자력을 비롯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러시아의 연구 분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부 분야별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학 연구의 특성상 국경을 초월한 협력 틀이 깨질 경우 해당 분야의 연구 정체는 불가피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가 2020년 발표한 SCI급 논문은 4만 8234편으로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많았다. 닛케이는 “냉전 이후 학술 연구는 국제 협력 하에 진전돼왔다”며 “첨단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면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에 따르면 세계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국제 공저 논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에 9%에 불과했지만 2019년 28%까지 증가했다.

특히 러시아가 깊숙이 개입한 분야의 서방 연구진은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이달 17일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와 함께 추진해온 화성 탐사 연구인 ‘엑소마스(ExoMars)’ 중단 결정을 내린 뒤 어떻게 연구를 이어갈지 고심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만 연구에 참여하거나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과 협력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나 연구가 예정보다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북극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 연구도 차질이 우려된다. 북극에서 기후변화 데이터 수집 연구를 진행하는 매슈 슈프 박사는 WSJ에 “(각국의 제재로) 러시아가 관할하는 북극 지역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면 북극권 기후변화의 원인을 심도 있게 연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북극과 국경을 맞댄 8개국 중 하나다.

이에 일각에서는 러시아 과학자와의 협력을 모두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과학고문이었던 존 홀드런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학술지 ‘사이언스’에 서한을 보내 “러시아 과학자와의 모든 상호작용을 중단하는 것은 과학기술 진전을 위해 세계가 이념을 뛰어넘어 협력해온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역설했다. AP통신은 전쟁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한 러시아 과학자가 8000명을 돌파하는 등 러시아 학계에서도 ‘학문 고립’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태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