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190㎝ 장신 이창용은 한국의 폴 볼커가 될까 [조지원의 BOK리포트]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 30일 귀국

그간 발언으론 매·비둘기 판단 불가

통화정책 환경은 금리 인상 불가피

201㎝ 볼커처럼 인플레 잡을지 주목

귀국길에 오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2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델레스국제공항에서 환송 나온 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귀국길에 오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2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델레스국제공항에서 환송 나온 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매파(통화 긴축 선호)일까, 아니면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일까. 8년 만에 외부 출신 총재가 나타난 만큼 이 후보자의 성향을 두고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이 후보자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만큼 매파라는 시각이 있지만 저성장도 함께 우려해왔기에 비둘기파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다만 그동안은 중앙은행 총재로서 한 발언이 아니기에 단정 짓기는 이르다. 정확한 성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자의 큰 키만큼 과감한 금리 인상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금리 인상을 통해 1970~1980년대 미국의 고물가를 잡은 폴 볼커를 떠올리는 것이다. 키가 190㎝인 이 후보자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배구 선수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볼커도 키가 201㎝로 매우 크다. 미국 금리는 연준 의장 키를 따라간다는 농담을 만들 정도다.

폴 볼커(오른쪽) 전 연준 의장. 서울경제DB폴 볼커(오른쪽) 전 연준 의장. 서울경제DB


볼커는 전 세계 중앙은행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독일 경제학자 헨리 카우프만은 볼커를 두고 “20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이라고 평가했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도 인플레이션을 극복한 볼커를 경제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꼽았다. 스스로 볼커처럼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볼커를 의미 있게 생각하는 직원들이 많다.



‘톨 폴(Tall Paul)’이라는 별명도 있지만 볼커는 주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미국은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당시 미국은 오일쇼크 등으로 1974년(-0.6%), 1975년(-0.2%), 1980년(-0.3%) 등 세 차례 경기 침체를 겪었다. 1973~1975년, 1980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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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커는 경기 부양을 포기하고 물가를 잡는 데 집중했다. 1979년 10월 6일 당시 볼커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15.5%로 4%포인트나 한 번에 올렸다. 언론에서는 이를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표현했다. 1981년에는 기준금리를 21.5%까지 인상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 농민들이 트랙터를 타고 연준으로 몰려와 시위할 정도였다. 볼커는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신변에 위협을 받았다. 금리 인상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은행 예금이자가 높아지면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물가상승률은 1983년 3% 안팎까지 떨어졌다.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확실히 잡은 뒤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중반부터 경기 호황기를 보냈다.

2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2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


최근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경기 상황도 당시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차질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고물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회복세마저 점차 꺾이면서 슬로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지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로 5개월째 3%대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만에 4%대 물가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은 당초 예상보다 금리를 더 빠르게 올릴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0.25%포인트가 아니라 0.5%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뤄질 것이라는 시장 전망도 쏟아진다. 이 같은 배경에 이주열 한은 총재는 송별 간담회에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며 마지막까지 추가 금리 인상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 후보자 개인 성향이 어떻든 최근 정책적 환경을 보면 금리 인상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정치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경제성장에 좀 더 힘을 싣게 되는 만큼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을 펼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한 경제학자는 “한은에 들어가면 중점적으로 보는 사안이 달라지기 때문에 밖에서 했던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 후보자가 현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매파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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