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이나 옷가게 등에서 카드로 결제 하려다가 '현금만 받습니다'라거나 '현금 결제시 10% 할인' 등의 문구를 보고 지갑 속에서 현금을 찾아본 경험, 누구나 한 번씩은 있으실 겁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인데요.
일부 자영업자들이 손님 불편을 무릅쓰고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나눠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현금 매출을 누락해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고 두번째는 카드수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실제로 현금 매출은 감추기 쉽기 때문에 정부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줘가며 카드 결제 비중을 늘려오기도 했습니다.
뒷북경제에서 느닷없이 카드 결제의 역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진실공방으로 번진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 때문입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 비서관은 지난달 30일 김 여사의 옷값 출처 및 대납 의혹이 일자 "사비로, 카드로 결제했다"고 반박한 적이 있는데요. 이후 "현금으로 결제했다"는 한복 장인(匠人)의 증언이 나오자 청와대가 나서 "현금으로 결제했지만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고, 이어 "영수증을 발행해준 적이 없다"는 장인의 재반박이 나오자 이번에는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나서 "명인과 디자이너 같은 분들에 대한 예우 차원이다"라고 밝힌 겁니다. 박 수석은 지난 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모두 사비라고 했더니 이제는 사비 옷값 규모와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며 "명인과 디자이너 같은 분들에 대해 예우 차원에서 현금 계산을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있고 현금이든 카드든 지급 방식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의 해명, 국세 징수 업무를 맡은 국세청 입장에서는 다소 난감한 설명입니다.
우선 "영수증을 발행한 적이 없다"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영수증은 현금 영수증도 통칭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업자는 현금 매출이 발생하면 현금 영수증을 발행해야하는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설령 구매자가 영수증 발행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영수증을 끊어둬야 하기는 합니다. 물론 이는 '법적으로' 그런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가 현금으로 돈을 낸 뒤 현금영수증을 요청하지 않으면 사업자가 매출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국세청이 매출을 잡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장인이나 디자이너는 '예우' 차원에서 매출을 좀 누락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우라는 표현 자체도 보는 시각에 따라 미묘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국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장인급 디자이너의 옷값은 사실상 정해진 가격이 없이 부르는 게 값인데 예우 차원에서 현금을 줬다고 하면 옷이라는 재화에 대해 대금을 치렀다는 건지, 아니면 옷은 사실상 무상으로 주고 수고비 명목으로 돈을 줬다는 건지 해석이 엇갈리게 이뤄질 수 있다"며 "옷에 대한 대금인지 수고비인지에 따라 당연히 세금 문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김 여사의 옷값 논란을 바라보는 공무원 사회의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자체가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치 기본 개념으로 앞세워 집권했기 때문입니다. 탁 비서관은 옷값 공개 요청에 "개인의 옷장을 열어봐도 되느냐"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만, 임기 말에 불필요한 논란으로 문재인 정부 전체에 대한 신뢰도까지 훼손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 옷장을 한 번 여는 게 더 좋겠다는 관료들의 푸념이 작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