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분대장에 "잘 좀 해라"…악몽 같은 4년·4번 재판으로 이어졌다[범죄의 재구성]

전역 직후 소대장·분대장 모욕 혐의로 재판행

1·2심 "분대장은 상관아냐" 모욕 혐의 판단안해

돌고 돌아 파기환송심 "모욕 고의 없다" 최종 무죄

법원, 4년 재판에 대한 형사보상금 220여만원 결정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사격술 예비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냐. 분대장이면 잘 좀 하고, 모범을 보여라.”



병장이던 A씨는 2016년 10월 소속대 생활관에서 군동기이자 2살 동생인 상병 B씨에게 이렇게 힐난했다. 사격술 예비훈련을 실시한 것에 불만을 느꼈던 A씨는 분대장인 B씨가 사격 성적이 자신보다 낮은 사실을 알게 되자 신경질을 부렸다. A씨는 해프닝에 불과했던 이날의 사건이 전역 후 4년간 발목을 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욕 혐의 하급심서 ‘무죄’ 판결 내려졌지만


A씨는 군대를 전역한 직후인 2017년 3월 상관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병사 시절 상관인 소대장 C씨와 분대장 B씨를 모욕했다고 봤다. 그는 2016년 9월 건강 문제로 유격훈련에 참여할 수 없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C씨를 가리키며 “소대장이 아픈데 쉬지도 못하게 하고, 어머니랑 면담한다는데 이거 협박이 아닙니까”, “소대장이 방금 저에게 욕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 사건으로 진술서 작성 요구를 받게 되자 C씨의 면전에서 진술서 용지와 펜을 집어던진 뒤 “사람 아프게 해놓고 이런 것 쓰라고 하는 거는 완전 시비 거는 것이지 않습니까”라고 성을 냈다.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이 간단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재판은 빠르게 진행됐다. 1심은 재판이 열린 뒤 3개월 만에 A씨에게 C씨에 대한 모욕 혐의는 징역 6개월에 선고유예를, B씨에 대한 모욕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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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A씨가 C씨를 모욕해 군기를 문란하게 한 점은 인정되지만, 초범에다 이미 제대해 재범가능성이 없는 점을 감안해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반면 B씨는 애초에 ‘상관’으로 볼 수 없기에 A씨에게 상관모욕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균형법 적용에 있어서 병사 상호간은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육군규정을 따른 것이다.

2심은 C씨에 대한 모욕 혐의도 A씨가 당시 욕설이나 반말을 사용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모욕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 외 판단은 1심과 같았다.

대법 “분대장도 상관…재판 다시하라”


검찰의 불복으로 진행된 상고심에서도 C씨에 대한 모욕 혐의는 무죄 판단이 나왔다. 문제는 B씨에 대한 모욕 혐의였다. 대법원은 하급심과 달리 분대장과 분대원도 명령-복종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분대장을 상관의 지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하급심은 B씨가 상관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그에 대한 모욕 혐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기에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2심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졸지에 전역한 지 4년이 지난 뒤에도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파기환송심은 B씨가 군형법상 ‘상관’에 해당한다는 점을 전제로 심리에 착수한 뒤 A씨의 발언에 대해선 “욕설을 한 것도 아니고 다른 분대원들이 없었던 생활관에게 분대장에게 반말을 했다는 점만으로 모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지난해 6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다시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4년 3개월간 이어진 재판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만약 하급심에서 B씨에 대한 모욕 혐의도 함께 다뤘다면 진작에 마무리됐을 사건이었다. 특히, A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마치 유죄를 전제로 이뤄진 것처럼 언론에서 다뤄지면서 A씨와 그의 가족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법원은 지난달 국가가 A씨에게 222만8000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의 파기환송심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순공 변호사는 “애초에 하급심에서 B씨가 상관에 해당한다는 점을 전제로 모욕 혐의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면 A씨가 4번이나 재판을 받게되는 수고를 안했을 것”이라며 “뒤늦게 억울함을 풀었다고 하더라도 A씨와 가족이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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