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를 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규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규제 완화 기대감에 한동안 잠잠했던 부동산 시장이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약 이행과 집값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공개적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인수위도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4일 한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건축 규제 완화를) 중요한 지역의 공급을 늘린다는 취지에서 조속히 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그런 와중에 가격이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후보자는 총리로 지명된 3일에도 “(재건축 규제 완화는) 필요한데 그 자체가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후보자의 발언은 도심 내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재건축 규제 완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정책 전환이 빨라질 경우 집값 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율 1년 한시 배제, 임대차 3법 개정 단계적 추진 등 규제 완화 대책을 연일 발표하던 인수위도 고민에 빠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한 총리 후보자가 지명된 후 한 발언들은 모두 인수위 내 분과나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할 때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윤 당선인의 공약 등을 과도하게 해석해 주택 매수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윤 당선인은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의 정밀안전진단 면제, 안전진단 시 구조 안전성 비중 하향 조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 추진, 분양가 규제 합리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인수위 내 부동산 TF는 공약의 국정 과제 반영 여부 등을 논의하기 시작한 단계로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집값 상승 기대로 인한 주택 가격 불안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 결과 지난달 주택가격전망은 104로 전월 대비 7포인트 올랐다. 대출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지난해 7월 이후 7개월 연속 하락했으나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감에 상승 전환한 것이다. 해당 지수가 104를 넘었다는 것은 1년 뒤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는 응답자가 더 많다는 의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4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1% 오르는 동안 재건축 아파트는 0.05% 상승했다. 특히 강남·송파·양천·여의도 등 재건축 추진단지의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 도심에서의 공급 확대를 위한 정비사업 규제 완화 가능성에 서울 주요 재건축은 물론 1기 신도시에서도 상승 기대감이 커지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의 불안 조짐에 인수위는 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두고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 개정 없이 시행령만으로 규제를 풀 수 있는 안전진단 내 비율 조정, 용적률 완화 등도 단계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규제 완화와 함께 재건축 조합원 지위의 양도 시점을 앞당기는 것과 같은 투기 방지책도 함께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 검토할 만큼 논의가 진전된 바 없다”면서도 “부동산 TF에서 재건축 규제를 다각도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