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5일 “남측이 군사 대결을 한다면 핵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정부에 대한 공세와 함께 “남측이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유화 발언도 동시에 내놓았다. 특유의 ‘화전양면’ 전술이라는 평가가 제기되는 가운데 북한이 우리나라의 보수 및 진보 진영 간 여론을 흔들기 위한 심리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핵 무력 등을 거론한 데 대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남한을 무력의 상대로 보지 않는다”며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 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것은 순수 핵보유국과의 군사력 대비로 보는 견해가 아니라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며 “쌍방의 군대가 서로 싸우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우리 민족 전체가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3일에 이어 이틀 만에 다시 나왔다. 이번에도 거친 발언이 이어졌지만, 유화적인 언사가 담겼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김 부부장은 3일 담화에서는 “남조선 국방부 장관은 ‘선제 타격’ 망발을 내뱉으며 반공화국 대결 광기를 드러냈다”며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가 내뱉은 망언 때문에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서욱 국방부 장관을 향해서는 ‘쓰레기’ ‘대결광’이라는 온갖 거친 표현을 동원하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날 담화는 한결 정제된 문장으로 이전보다 발언 수위도 낮았다.
하지만 남측에 대한 경고는 여전했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며 “남조선군은 전멸에 가까운 참담한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전제하면서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주장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두 차례의 김여정 담화를 통해 대남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 장관 등에게 책임을 돌리며 핵 개발 등 무력 증강을 합리화하는 명분을 확보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노동신문에 김여정 담화를 공개하며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며 “외부 세력에 의한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북한 주민을 단합하고 국방에 대한 투자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북한은 이달 15일 김일성 생일 등을 맞아 대남 대북 선전을 펼치며 무력 증강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미국은 북한의 도발 수위에 맞춰 괌 미군기지 내 전략 무기를 배치하거나 최첨단 정찰기 등을 동원해 북한을 견제하고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여정 담화에서 유화 발언이 나온 것과 관련해서는 남측의 ‘자중지란’을 노렸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김여정이 첫 번째 담화에서 남측을 거칠게 비방하자 오히려 보수 세력이 힘을 얻었다”며 “역효과가 발생하자 유화 발언을 하며 남측의 ‘자중지란’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김여정 담화와 관련해 “어느 때보다 한반도 상황이 유동적인 시기인 만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