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현정택의 세상보기] '고용 없는 성장' 극복하려면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경제 살아나도 일자리는 제자리

세금 쏟는 정부 주도 해법 멈추고

노동시장 개혁·기업 규제 혁신 등

민간 고용 유도할 정책에 힘써야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의 매출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보다 17%, 영업이익은 102% 증가했지만 고용은 불과 0.1%로 제자리걸음 했다. 그나마 삼성전자 등 소수 기업의 고용 증가 덕분이며 절반 가까운 기업은 직원 수가 줄었다.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늘지 못하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고용 정체는 감염병 사태 훨씬 전부터 생긴 문제다. 생산에 따라 늘어나는 취업자 수를 뜻하는 취업유발계수가 10억 원당 2000년 25명, 2010년 14명, 2019년 10명으로 축소돼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자동화 및 디지털화 추세로 인력을 덜 쓰는 현상이 앞으로도 심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가며 고용에 대처했으나 정부 주도의 해법이었다. 공무원과 공기업 정원을 늘리고 재정에 의한 단기 직접 일자리를 대폭 확대했다. 그 결과 통계상 취업자 수는 유지됐지만 세금을 쏟아 공공 부문을 키우느라 민간 고용은 늘지 못하고 한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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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이 만든다”며 시장 원리에 의한 고용 증대 방침을 밝혔다.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이를 제약하는 큰 걸림돌이 노동시장 이중 구조와 경직성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노조 있는 대기업 정규직 월급은 458만 원으로 노조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월급인 166만 원의 2.8배다. 노동시장이 단절되고 유연성이 없는 것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따라서 원할 때 어떤 형태로든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 계약 방식을 보장하고 근로 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연공서열제를 타파하고 직무·성과급 제도를 확대해야 청년들 일자리가 늘어난다.

통계청 조사에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이 대기업 21.6%, 공기업 21.5%, 국가기관 21.0%로 나타났다. 공공 부문이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인데 철밥통이라고 부를 만큼 경쟁력과 상관없이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공 부문이 빼다 쓰는 인력을 줄여야 민간 경제 활력이 살아난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공무원을 줄였는데 지금이 더 긴박하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위협받고 한국 경제는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로 일본이 경험한 장기 경기 침체 리스크를 안고 있다. 정부가 관리·운영하는 공공기관이 350개나 되는데 교도소까지 민영화하는 추세에 비춰 대폭 축소해야 한다.

올해 기업이 채용하려는 대학 졸업자 중 이공계가 60%인데 실제 졸업생 중 비율은 40% 미만으로 전공 불일치도 고용 부진의 원인이다. 대학 입시제도를 정점으로 한 교육에 대한 정부 통제를 줄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대학 정원과 운영의 자율성을 넓혀줘야 인력 수급이 원활해진다.

기업 규제 혁신도 고용 확대의 열쇠이며 그 출발점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경영주의 형사책임을 포괄적으로 적용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든데 시행에 신중해야 한다. 원격의료는 많은 나라에서 활용되고 한국 기술의 국제 경쟁력이 있는 분야로 법으로 제한할 이유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37만 개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됐는데 국제 기준과 어긋난 규제도 일조했다.

노동 개혁과 공공 부문 축소, 대학 자율성 확대, 규제 혁신 등 모두 단기적 안목으로 인기 없거나 정치적 저항이 큰 정책이다. 그러나 그 산을 넘는 것이 한국 경제의 과제이자 새 정부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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