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눈] 배드뱅크, 도덕적 해이 대책부터

김지영 금융부 기자





“빚 안 내고 코로나19에도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어떻게든 버틴 사람은 뭐가 되는 건가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 해결을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한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제부터 돈 갚지 말고 연체해야 하나’ ‘이율 낮다고 대출 풀로 땡겨서 주식, 부동산 하는 데 보태 쓴 분들까지 적용되나’라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반응은 모두 차기 정부가 배드뱅크를 통해 원리금 탕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불거졌다. 정부에서 연체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권을 사들여 원리금을 일부 탕감해주고 나머지를 10년 이상의 기간에 나눠 갚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주택담보대출에 준하는 장기간에 걸쳐 저리로 연체된 대출을 상환할 방안을 관련 분과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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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기 정부가 배드뱅크를 대책으로 꺼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업황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 시기까지 겹치면서 9월 만기 연장, 상환유예 조치가 끝나면 대출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대책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방향이 돼서는 안 된다. 원리금 삭감 가능성에 벌써부터 일부 차주들 사이에서는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는 채무자들만 ‘바보’가 되는 꼴이다.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되면 결국 빚을 내 갚아야 한다는 시장 원칙은 무너지게 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 대목으로 시장 원리를 존중하겠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배드뱅크에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는 방안을 담는 것부터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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