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무기대여법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듬해인 1940년 독일군의 공습으로 위기에 처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SOS(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다. 영국군의 보급로를 미국이 보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직접적인 참전 없이 영국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 미국 방어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특정 국가에 군수품을 판매하거나 이양·임대·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격렬한 논쟁 끝에 ‘미국방어증진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돼 그해 3월 루스벨트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이 법을 근거로 미국은 나치 독일과 전쟁을 치르는 영국·프랑스·중국·소련 등 연합국에 비행기·탱크·폭발물 등 무기뿐 아니라 군화·주류 등 다양한 물품을 공급했다. 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백악관이 직접 관리하는 무기대여청까지 만들었다. 무기대여법은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9월 자동 폐기됐는데 종전 때까지 미국이 연합국에 보낸 전쟁 물자 규모는 약 5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법에 따른 미국의 군사 원조는 연합국이 전세를 역전시키고 승리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무기대여법이 ‘게임 체인저’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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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이 최근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을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방어를 위한 무기대여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차 대전 직후 사라진 무기대여법이 81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살상 무기를 제공하려면 사안마다 거쳐야 하는 의회 동의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최소화해 원활한 무기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이 법안의 목적이다. 법이 하원에서 가결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미국은 재블린 미사일을 비롯한 대전차 무기, 중·장거리 대공 방어 시스템 등을 우크라이나에 곧바로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잇따른 지원은 자체 국방력 강화와 함께 유사시 도움을 줄 수 있는 굳건한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번에도 미국의 무기대여법이 2차 대전 때처럼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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