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소통의 기회도 동등해야 한다

장소원 국립국어원장






2014년 혹은 2015년 즈음 비행기에서 본 영화가 있다. 프랑스어 원제목은 ‘벨리에 가족’, 한국에서는 ‘미라클 벨리에’라는 제목이 붙었다. 비행기에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필자는 먼 곳을 여행할 때면 늘 서너 편의 영화를 본다. 몽롱한 상태에서 이 영화 저 영화를 보다 보면 내릴 때쯤에는 줄거리들이 뒤섞이고 영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영화는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주인공 폴라는 가족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역사다. 가족은 그녀를 필요로 하는데 폴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이 공감할 수 없는 노래에 재능이 있고 유학을 떠나려 한다. 세상 밖으로 훨훨 날고 싶어 하는 폴라를 처음에는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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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지난해에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뜻하는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아카데미상을 포함해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 때문인지 우리 언론에서도 농인 부모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청인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에 주목한 기사가 몇 차례 보도됐다. 언어적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을 배우고 수어를 익혀 부모와 청인의 세상을 연결하며 살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크고 많은 고충을 겪어내고 있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지난해 말부터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언론과 정치권·대중의 관심이 이들에게 집중됐다. 그 시위가 출근에 바쁜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을 테니 이들을 흰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도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법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아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이 시위를 택한 듯하다. 그렇게라도 물의를 일으켜야 언론에서 다뤄 줄 테니 국민한테 자신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다행히 정치인 중에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회의원이다. 그는 시위 현장을 찾아 무릎을 꿇고 장애인들에게 사과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조율하려 노력함으로써 장애인의 힘이 되고자 한다고도 했다.

국립국어원은 청각과 시각에 장애가 있는 이들을 위한 수어와 점자 관련된 일을 한다. 한국수어 자료를 모으고 사전을 편찬하며 한국수어교원 자격제도의 운영과 공공수어 통역을 담당한다. 개정 한국점자규정에 따라 점자종합정보누리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국가가 장애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선진국은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들 한다. 아니,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가 선진국이다. 다음 주 수요일,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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