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세상 주인공 ‘당신’만의 책 만들고 싶었죠”

무명 작가 모임 '라이터스' 이희영 대표

출판사 위주 문단 구조 벗어나려

독자와 1:1 소통 즉석에서 작성

15만원이면 하나 뿐인 소설 완성

세상 모든 것 글로 전하는 게 작가

코로나 완화 땐 문화 행사 더 열 것

이희영 라이터스 대표이희영 라이터스 대표




얼마 전 우울증을 앓던 한 청년이 소설 형식의 자서전을 냈다.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독자는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이다. 그가 ‘나만의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단돈 15만 원이었다.



청년의 자서전을 쓴 작가는 이희영(31·사진) 라이터스작가협동조합 대표. 라이터스는 2013년 작가와 독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이뤄진 단체로 현재 9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초창기 김민관 작가가 대표로 있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이 대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2013년 웹 소설 출판사 소속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얼마 안 돼 중단했다. 글쓰기로만 먹고 살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견고했다. 낮에는 기획 회사에 다니고 주말과 저녁에만 작가 활동을 해야 했다.



그가 다시 펜을 잡은 것은 출판사 위주의 기존 문단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과 같은 무명 작가들이 돈을 벌기 힘들다는 라이터스의 문제의식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14일 서울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대표는 “출판사 위주의 기존 문단에서는 작가와 출판사의 수익 배분 비율이 약 3 대 7 정도”라며 “유명 작가 외에는 무일푼이 될 수밖에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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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질서에서 벗어나려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미국에는 ‘60초 소설’로 유명한 댄 헐리라는 작가가 있다. 길거리나 백화점·교회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과의 1 대 1 대화를 통해 즉석에서 소설을 써준다. 이름을 알리지 못한 작가들의 롤모델인 그가 기존 질서를 깨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는 “독자를 직접 찾아가 1 대 1 대화를 통해 당신만의 특별한 책을 만들어준다면 별 볼일 없는 작가도 글만 가지고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라이터스의 메인 이벤트인 ‘글 파는 가게’가 등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희영 라이터스 대표이희영 라이터스 대표


단지 돈만 벌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글 파는 가게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삶을 이야기로 담을 수 있다는 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작가는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글로 전해주는 존재”라며 “대중들이 원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만 한 사람만을 위한 것도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라이터스에 글을 의뢰할 때 받는 비용은 정확히 14만 9000원이다. 소설 한 편 분량이 원고지 3000~5000자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 안되는 금액이다. 이 중 작가에게 돌아가는 것은 10만 원. 나머지는 표지 제작, 디자인 등을 위한 비용으로 라이터스에 귀속된다. 출판사가 작가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기존 출판 관행과는 정반대다.

반응은 호의적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소설을 위해 인터뷰하던 내내 펑펑 울던 한 고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받고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며 “또 다른 고객은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야기를 손 편지 형식으로 써줬더니 온 가족이 돌려 읽으며 운 적도 있다”고 전했다. 덕분에 라이터스는 자서전 제작, 차(茶) 업체 등과 소설을 제공하는 양해각서(MOU)를 맺기도 했다.

물론 그의 꿈은 인기 작가가 돼 자신의 글이 널리 읽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감동과 대중적 인기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의 답도 ‘대중적 인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글 파는 가게의 온·오프라인 시장을 구축하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더 많은 문화 행사를 개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돈이 잘 벌리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에게는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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