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최근 다양성을 전면에 내건 행보를 강화하며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디즈니를 정치 논쟁의 한가운데 올려둔 쟁점은 플로리다주가 얼마 전 도입한 이른바 '게이 언급 금지(Don't say gay)법'이다. 해당 법안은 유치원~초등학교 3학년에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한 교육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전국적인 반대를 불러왔다.
디즈니는 당초 이 법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직원들이 부분 파업과 항의 시위에 나서자 "이 법이 연방의회나 법원에서 퇴출당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할 것"이라고 공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주정부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디즈니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놀이동산 '월트 디즈니 월드'를 운영하고 있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디즈니의 발표 이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깨어 있는 디즈니'는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주의원들은 디즈니에게 놀이공원 부지 개발·관리 특혜를 준 법안을 폐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55년 전 제정된 이 법은 디즈니에게 월트 디즈니 월드 부지를 자유롭게 개발하고 관리하도록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NYT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이 '마법 왕국'으로 서서히 유입되고 있다"며 "디즈니는 아무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모두를 잃은 상황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디즈니의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는 반(反) 노조 성향의 보수주의자였고 이에 따라 디즈니는 정치적, 문화적 논쟁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왔다. 하지만 2005~2020년 로버트 아이더 전 최고경영자(CEO)의 재임 기간 동안 색채가 바뀌었다. 아이거는 2017년 주주총회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것"이라 천명했다.
이후 디즈니는 배우 캐스팅과 서사에서 다양성, 포용, 평등 등을 강조하면서 작품에서도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영화 '블랙팬서'에서는 거의 모든 배역을 흑인으로 캐스팅했고, '모아나' '코코' '소울' '엔칸토: 마법의 세계'와 같은 애니메이션에서는 다양한 인종·문화를 선보였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테마파크의 안내방송에서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이라는 문구를 빼고 '모든 연령대의 꿈꾸는 이들'(Dreamers of all ages)로 대체했다.
하지만 디즈니 내부에서는 디즈니의 최근 행보가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디즈니의 '스토리 매터(Story Matter)' 팀은 2019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작들의 차별 요소를 검토했는데, 인어공주의 마녀 캐릭터에 대해서는 "피부색이 어두워 인종차별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피터팬의 후크 선장 캐릭터에 대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디즈니의 한 임원은 "예술적 창작물을 '정치적 올바름'(PC)의 시선으로만 보면 창의성이 얼어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캘리포니아대학의 엔터테인먼트·미디어·사회 교수이자 전 디즈니 스튜디오 임원인 마틴 캐플런은 "디즈니의 임무는 항상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가족 고객을 기분 상하게 하거나 혼란스럽게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매우 분열돼 있고 매우 격앙돼서 디즈니조차도 우리를 단합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