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이 검증된 시험을 거치지 않고 자격을 자동 부여하는 법률이 문제예요. 무늬만 변리사를 만들어 지식재산권(IP)법률 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변리사 자격을 자동 부여 받는 변호사 출신들이 변리사법 제11조(변리사회의 가입 의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정부 사업과 과제를 수행하거나 중소·벤처 업계에 수준 이하의 IP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업계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18일 대한변리사회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특허청에 등록한 변리사는 1만 486명이다. 변리사법 제11조는 특허청에 등록한 변리사는 대한변리사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 변리 업무를 근절하는 동시에 의무 연수와 직업윤리 준수 등 변리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법률적 안전장치다.
변리사회 가입 의무를 지키지 않아 국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난 무자격 변리사는 4120명. 이 가운데 무려 94.1%인 3881명이 변호사 출신 변리사다. 전체 변리사 대비 37.0%에 달한다. 국내 변리사 3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변호사 출신의 무늬만 변리사라는 얘기다.
대한변리사회 관계자는 “변리사회 가입 의무를 위반한 변리사 업무는 재보수 교육 부재와 IP 업계의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전문성 약화 초래는 물론 실효성 있는 IP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리사 업계는 무늬만 변리가가 활동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가장 큰 이유는 특허청의 소극적 대응이다. 특허청은 2018년 변리사법 제11조 위반을 이유로 129명의 변리사에게 징계 수위 중 가장 약한 견책 처분을 내린 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특허법인의 한 관계자는 “전체 미가입자 변리사가 4000여 명이 넘고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변호사 출신 변리사인데 특허청이 대한변호사협회 눈치를 보며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요인은 변리사 등록과 동시에 대한변리사회에 가입해야 하는 제도적 절차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 출신들이 변리사로 등록만 하고 국가 관리에 들어가지 않은 채 정부 사업이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특허청 국정감사에서도 변리사회 가입 의무를 위반한 법 위반자가 정부 사업이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변리사 업계는 변리사회의 ‘개업회원증명’을 변리사의 소송대리에 있어 필수 증명 서류로 첨부하도록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변리사는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는 지식재산권을 다루는 전문가로 투철한 직업윤리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며 “변리사법 위반자가 아무런 제재 없이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