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망사용료법 한미 통상문제로 번지나]통신-CP 대결에 美 정부 가세로' 확전 일로'

◆'망 사용료법'에 주한 美대사관 우려 표명

국회, 망사용료 강제 관련 6개법안 올려

美 "국제기준 어긋나"…사실상 경고장

최악땐 미국내 韓기업 규제 가능성 제기도

빅테크 대부분 차지하는 국내 망 트래픽

넷플릭스·SKB 싸움에 국내외 CP도 참여

사진 제공=EPA 연합사진 제공=EPA 연합






넷플릭스만을 겨냥해 불거졌던 망 사용료 논란이 국회 입법 추진으로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통신사(ISP) 대 콘텐츠 회사(CP)’라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대립 구도가 형성된 데 이어 한국과 미국 간 통상 문제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 국회가 입법 절차를 시작한 상황에서 한미 정부간의 문제로 확전될 경우 정치권이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본격 논의 첫날…美 대사관 “기업의 사업·투자 방해하는 법” 우려


21일 국회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통신사가 CP에게 망 사용료를 강제할 수 있게 하는 ‘망 사용료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열린 과방위 법안소위에는 망 사용료와 관련한 총 6개 법안이 올라갔다. 법안소위는 입법에 있어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로 이어지는 첫 관문이다.

하지만 이날 소위가 열리기에 앞서 미국 정부가 나서 입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며 사실상 국회에 경고장을 보냈다.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국내 기업환경 세미나에 참석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망 사용료법이 미국 기업의 한국에서의 사업과 투자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칫 미 정부에서 한국 기업을 규제하는 통상 문제로 확전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사태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는 ‘2022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부터 여러 국회의원이 CP가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며,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의 국제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법원 판결에도 접점 못 찾는 SKB-넷플릭스…불확실성 여전





국내에서는 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를 두고 지난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앞서 법원은 SKB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1심 재판에서 넷플릭스가 SKB에게 망 이용 대가를 내는 게 맞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그 대가를 반드시 금전으로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는데 넷플릭스 측은 이 내용을 들어 SKB에 망 사용료 대신 인프라를 지원하겠다고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설치된 설비에 미리 콘텐츠를 전송하는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란 기술을 통해 트래픽 부담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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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양 측 간 의견 차이가 팽팽한 가운데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자 국회·정부가 나서 아예 “CP가 ISP에 대가를 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을 마련하기에 이르게 됐다.

통신 업계는 매년 수 백억 원에 이르는 망사용료를 내는 국내 CP와 달리 해외 CP가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며 망 사용료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국내 망 트래픽의 대부분을 해외 CP가 발생시키는데 막상 망 사용료 부담을 국내 CP들만 내고 있는 건 부당하다는 논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기준 인터넷 트래픽과 관련해 구글이 27%, 넷플릭스가 7%, 페이스북이 3%를 발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 2%, 카카오(035720) 1% 보다 해외 CP가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방송통신위원회 중재도 건너뛰고 법원서 대가를 내라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성실히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다”며 “망 사용료법 통과를 통해 이를 강제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네카오, 구글도 거센 반발…IT업계 주도권 다투는 新舊 갈등 분석도




CP 측에서는 망 사용료 법이 낳을 파급 효과를 걱정하고 있다. 앞으로 법 통과 후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CP들은 현재 자신들이 지급하고 있는 망 사용료 정산 방식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통신사 간 트래픽 이동까지 과금하도록 하는 국내 ‘상호접속고시’란 제도 때문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망 사용료법은 이러한 정산 방식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게 CP들의 시각이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협·단체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최근 해외 전문가들을 초대한 세미나를 열어 망 사용료법의 부당성을 다루기도 했다. 여기서 현재 갈등의 본질은 과거 주류인 통신사와 신흥 세력인 콘텐츠 회사 간 주도권 다툼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제프 휴스턴 아시아·태평양 네트워크 정보센터(APNIC) 최고과학책임자는 “통신사들이 과거의 영광을 꿈꾸지만 갈수록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데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에는 구글 유튜브가 망 사용료법과 관련해 처음으로 나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본부장은 “망 사용료는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켜 한국 크리에이터가 누려야 할 투자 기회를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 관계자는 “유튜브가 크리에이터를 앞세워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망 사용료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크리에이터, 통신업계와의 상생을 위해 글로벌 CP로서 책임을 다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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