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곡물외교 구심점' 컨트롤타워 만들고…'농산물 스와프'도 도입해야

[흔들리는 식량 주권] <하> 식량 안보에 사활 걸어라

1년전 식량위기 경보 울렸지만, 정부 올 2월에야 위원회 구성

그마저도 공급망 구축 근본 대책없이 금리인하 등 단기처방뿐

日, 남미와 우선 공급조건 2억弗 융자 합의…대응책 참고할만


식량안보는 더 이상 농림축산식품부만의 업무가 아니다. 작황 불안으로 곡물 수출에 빗장을 거는 국가가 늘어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식량 수급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면 정치·외교적 대응이 필수다. 전문가들은 그런 맥락에서 “식량 외교에 적극 나서는 등 위기에 선제 대응할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정부도 불안한 곡물 시장에 대응하고 있지만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초보적 대응에 머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악화로 미증유의 식량 위기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국제 곡물 조기 경보 지수’가 지난해 4월부터 ‘주의’ 단계를 가리켰음에도 올 2월에야 뒤늦게 ‘국제곡물수급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농식품부·기획재정부·해양수산부·농촌경제연구원·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마련한 대책도 식품·사료 원료 구매 자금 금리 인하, 사료 대체 원료 할당량 확대 등 사후약방문에 가깝다. 위원회에 참여한 관계자조차 “작황은 기후의 영향을 받아 6개월 이상의 수급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한계를 토로할 정도다. 지정학적 긴장,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곡물 위기에 상시 대비할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전문가들은 컨트롤타워를 통해 식량안보의 핵심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외교적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정빈 서울대 농업·자원경제학 교수는 “범정부 외교 사업 중 하나인 공적개발원조(ODA)는 현지 농업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프라 구축을 통해 우리 기업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방법”이라며 “또 해당 국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식량 위기 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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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할 만한 사례로 일본이 있다. 일본은 고령화와 경지 면적 감소로 식량 자급률 제고의 한계를 일찍 인정하고 해외 공급망 구축을 위해 범정부적으로 움직인 대표적 국가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농림수산성과 외무성은 2009년 ‘식량안보를 위한 해외투자촉진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시 일본은 정부의 역할을 기술 개발 및 인프라 구축 사업에 대한 ODA 실행,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투자 활성화 환경 조성으로 규정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노력으로 스미모토·마루베니·미쓰이 등 일본 대기업이 해외 농업 생산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은 2014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농기업에 약 2억 달러의 운용 자본을 융자하기로 합의하면서 곡물 위기가 발생하면 자국 수요 물량 외에 나머지를 일본에 우선 공급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약속을 얻어내기도 했다. ODA 집행 및 현지 진출 기업 등을 통한 주요 농업국과의 긴밀한 관계 형성이 식량 수급 위기 시 정부가 대응할 운신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 정부의 ODA 집행에서는 이런 전략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주요 농업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ODA 사업 집행을 보면 2010~2020년 농림업 관련 ODA는 2010년과 2012년 단 두 차례뿐이었다. 사업 규모도 각각 3만 9857달러와 2만 2486달러로 작다. 한 농업 정책 연구원은 “ODA 사업은 수여국의 요구도 고려해야 해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사업을 집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농림업 ODA 사업 규모는 2억 2400만 달러(2018년 기준)로, 미국(약 12억 달러), 일본(8억 달러)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작다. 전략적으로 사업 집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산물 스와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보증하는 방법으로 비옥한 땅이 많은 국가의 농장 개발에 참여해 해외 농업 개발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특히 ‘통화 스와프’처럼 ‘농산물 스와프’도 도입해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비상시 기업을 통해 국내로 곡물을 반입하려면 외교적 접근이 필요하다. 해외농업·산림자원개발협력법 제33조에 따르면 농식품부 장관은 농산물 수급 비상 상황의 경우 해외 진출 기업에 농산물을 국내로 반입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출제한을 건 국가와 곡물 반입을 명한 우리 정부 사이에 끼어 기업만 난감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기업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외교적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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